김영하 2

여행의 이유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추방과 멀미 中 모든 기억은 과거를 편집한다. 뇌는 한 번 경험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잊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어딘가 깊숙한 곳에 처박아두어서 찾을 수 없게 될 뿐. 발상은 무게가 없다. 지혜도 그렇다. 기술도 마찬가지. 그래서 이런 무형의 자산을 가진 사람은 어딘가에 붙들려 있을 필요가 없다. 모국어의 바다를 떠나면 이런 변화가 잘 느껴지지 않고 언어의 신선도에 덜 민감해진다. 작가는 우렁찬 목소리보다는 작은 속삭임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자신 없는 음성으로 낮게 읊조리는 소심한 목소리에 삶의..

한밤의 도서관 2019.05.06

살인자의 기억법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거야.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사막이었다.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습기라곤 없었다.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어린 날도 있었다. 내겐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나는 늘 사람들의 눈을 피했다. 그들은 나를 소심하고 얌전한 사람으로 생각했다.거울을 보며 표정을 연습했다. 슬픈 표정, 밝은 표정, 걱정하는 사람의 표정을 그대로 흉내내는 것이다. 남이 찡그릴 때 찡그렸고, 남이 웃을 때 웃었다.옛사람들은 거울 속에 악마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지. 그들이 거울에서 보던 악마, 그게 나일 것이다. 여자들의 표정은 풀기 어려움 암화와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법석들은 피우는 것처럼 보였다. 울면 짜증이 났고 웃으면 화가 났다. 시시콜콜 얘기를..

한밤의 도서관 2015.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