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하는 소위 번아웃 증후군(탈진 증후군.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피로감으로 무기력증이나 자기혐오, 직무 거부 등에 빠지는 증후군)에 가까웠다는 식으로 본인은 말하더군.
“인생 최대의 결단. 그때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후후, 대체 몇 번이나 결단을 해야 하는 걸까. 할 때마다 ‘최대’가 되어가. 그 왜, 항생물질이 병원균을 죽이면 항생물질에 지지 않는 균이 생기잖아? 내성균이라고 하던가. 그거랑 마찬가지야. 인생 최대의 결단은 내 인생에 수없이 찾아오고, 그때마다 난이도가 높아져서 나한테 힘든 결단을 요구하지.”
무거운 절망감이 바닷가에 밀물이 밀려들 듯 철썩대며 가슴으로 밀어닥쳤다.
내인생, 변변찮은 것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네. 정말로 종막. The End. 앙코르 없음. 귀가를 서두르는 관객들. 독백하는 나, 마지막 관객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뒤 일어나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춘다. 페이드 아웃. 조명이 꺼지고 공허한 암흑만이 남는다.
“흉이 나오면, 그보다 더 나빠질 일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대길은 앞으로 운의 기운이 꺾이는 일밖에 안 남았잖아.”
가장 무서운 것은 방심이다. 아무리 경계를 한다 해도 사소한 방심이 생기는 부분은 어쩔 수가 없다. 박자가 맞아 떨어지면 방심에 금이 생기고, 벌어진 틈은 서서히 커져간다.
어두워서 바깥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이어지는 직선의 빛줄기는 앞바다에서 조업하는 어선의 불빛이다. 수평선 위로 떠오른 조업등을 보고 있자니 지금껏 그녀 앞에서 사라져간 죽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97년 9월 1일. 서른이 됐지만 그녀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누구독 축하해주지 않았고 자신 역시 축하할 생각이 없었다. '생일, 그런 것도 있었어?' 하는 느낌뿐이었다. 아무런 감흥도 없었고, 그저 인생 중 하나의 통과지점, 혹은 한 단락이라는 의미조차 없었다.
사람의 호기심이라는 게 그런거야. 어디로 도망쳤는지 모르면, 거기서 이야깃거리가 떨어져서 끝.
그녀 내면의 분노는 끓는점에 가까이 가 있어 조금만 자극해도 폭발할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구나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은 할 수 있는거 아닌가? 행동에 옮기지 않을 뿐, 공상 세계에서는 누구나 사람을 죽인다고. 나도 예외는 아니야. 꿈이나 공상 속에서 지에코를 죽인 적은 있어. 그건 부정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