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차가운 밤에

uragawa 2011. 4. 27. 09:59

가령 내가 쿄지를 열렬하게. 정말 죽을 것처럼 사랑하고 있다면 문제는 없다. 지금이라도 쿄지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할 수도 있다. 쿄지는 좋은 사람인데, 

왜 좀 더 애틋하게 사랑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지금 당장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왜 둘이 있으면 고독이 짙어지는 것일까.

이를테면 내가 좀 더 아빠와 엄마를 사랑하면 되는 일이다. 좀 더 솔직하고 좀 더 다감한 딸이 되면 되는 일이다. 집까지는 전철을 타고 30분. 전화를 걸어 요행히 남동생이 받으면, 차를 몰고 데리러 와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낯익은 식탁에서 넷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어째서일까. 왜 그런 일이 이토록 싫을까. 진절머리가 난다. 치가 떨린다. 죽어도 싫다. 혼자 있는 편이 그나마 낫다.
- 파를썰다 中



12시가 지나자 단골손님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나가면 또 한 사람, 그렇게 잇달아 나타나 크리스마스 따위는 전혀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서서 잡지를 읽는 아저씨들. 1시가 넘어서는 가끔 와서 과자를 산더미처럼 사 가는 언니도 나타났다. 외로운 여자는 살이 찐다,는 시답잖은 소리는 하지 말자. 오늘 밤은 초콜릿이라도 한 개 덤으로 주고 싶은 심정이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나. 유리문 밖은 깊은 밤이고, 가게 안은 눈이 부시도록 밝고 따뜻하다. 여전한 정적, 여전한 고독. 나는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어느 이른 아침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