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제물의 야회

uragawa 2011. 4. 18. 11:08

사람은 사람의 몸을 보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상상한다.
그런 습관이 한순간 오코우치에게 천장을 보고 누운 여자의 양손이 다 바닥 속으로 빠져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했다.
- 살인 中



사회에는 이물(異物)을 배제하는 습성이 있다.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위와 똑같이 생활하고 비슷한 가치관을 몸에 두르고 자신을 많은 사람들 속에 매몰시켜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무서운 물음인데도 왠지 그 꿈을 꿀 때마다 달콤하고 매력적인 향기가 따라온다. 죽음이란 그렇게 아무도 없는 바다에 혼자 가라앉아가는 듯한 것일까.

- 접촉 中



그는 흘끗 시계를 보았다. 5시 34분. 정확히 척척 일을 끝내고 싶다.

일이란 그런 것이다.
- 결단 中



“오코우치 씨는 주필리아(zoophilia)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아뇨....... 모릅니다.”
“동물에 대해 비정상적인 애착을 보이는 심리예요. 어릴 때 학대를 받거나 한 결과 인간에게 애정을 품을 수 없게 되고, 그만큼의 애정이 동물로 향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병적으로 동물에 집착한다는 말씀입니까?”
“네, 마음의 병이죠. 인간과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결과라고들 하죠. 제가 마음에 걸리는 건 시부사와 히데토시가 살해된 방법이 전에 시부사와가 죽인 고양이 살해 방법과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에요. 두 눈을 뭉개고 손발을 잘라내 잔혹하게 살해하는 것으로 시부사와가 고양이에게 행한 처사를 똑같이 갚아주었다고 본다면, 살해동기에 주필리아를 동반한 파라노이아(편집증)가 얽혀 있어요. 그런데 19년 전 사건 당시에 소년이었던 나카조의 방에서 고양이 혀를 잘라내 채운 병이 발견된 이야기는 아시죠?”


“시체는......, 그러니까......형사가 되고 사람이 죽은 건 많이 봐왔습니다. 하지만 방금까지 살아 있던 사람이 죽는 순간을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더구나 그것이 요코야마 씨라니......”

뺨을 세게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죽어 있는 것과 죽는 것은 다르다.
시체를 보는 것과 방금까지 살아 있던 인간이 죽는 장면에 입회하는 것은 다르다.
- 통곡 中



사람은 허망하게 죽는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누군가에게 살해되어 자신의 인생을 마쳐야만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사태다.


다만 너는 유감스럽겠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해두지. 네 시체는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 거야. 시체가 없으면 살인 사건은 성립하지 않아. 그런 식으로 매년 수십 명, 수백 명의 인간이 사라져가고 있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19년 전에 나카조 겐이치가 일으킨 사건을 누구나 충격적이라고 말하지. 그러나 내가 볼 때 그건 단지 열네 살 소년이 스스로의 살인을 과시해서 일본 전체를 들끓게 했을 뿐이야. 진짜 충격적인 일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실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지.

-폭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