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식물학자의 식탁

uragawa 2020. 9. 25. 22:30

처음 은행을 먹은 것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다. 그것도 한 일식집에서였는데 친구가 구운 은행을 주문했었다. 피스타치오처럼 딱딱한 흰 껍질을 깨물어 알맹이 부분의 얇디얇은 ‘땅콩껍질’을 문질러 깨끗하게 벗겨내면 라임빛 은행을 즐길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맛이 은행의 훌륭한 명성에는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바삭하지도 않고 맛이 시원하거나 좋지도 않았다. 쫀득함과 딱딱함의 중간 정도 식감으로 마치 하루 정도 지난 찹쌀 경단 같았다. 물론 맛은 경단처럼 단순하지 않고 살짝 쓴 맛이 느껴졌다. 식탁에서 은행의 유일한 역할은 생선회의 비릿함과 느끼함의 균형을 맞추는 것뿐이었다. 은행만 단독으로 먹는다면 절대 좋은 요리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작은 열매’를 기꺼이 맛보려고 한다. 은행이 ‘건강에 좋다’는 후광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가지 요리를 시작한다. 홍샤오치에즈紅焼茄子*, 샤오치에허境茄盒**, 쏸니치에즈蒜泥茄子***, 가지 구이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가지는 손질하기도 좋고 다양한 맛과 형태로 요리하기 쉬운 식재료다. 머리 부분이 둥글둥글한 이런 채소에는 원래 특별한 맛이 없고, 부스스한 몸퉁이는 쉽게 조미료나 소스를 흡수하기 때문에 정말로 요리사의 좋은 파트너라고 할 수 있다.(물론 체중감량 중인 사람들에게는 악몽이다. 기름을 너무 많이 먹기 때문이다).

* 매콤한 가지 볶음
** 고기를 넣은 가지 조림
*** 다진 마늘을 넣은 찐 가지 무침



중국 식품학계에서는 이런 말이 전해진다. “약과 독의 차이는 사용량에 있다.” 그런데 여러 과학자들과 미디어계 종사자들은 아무 생각 없이 위험성을 부풀리고 있다. 어성초에 간과 신장을 손상시킬 수 있는 아리스토락탐aristololactam이 함유되어 있고, 고사리에는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보도는 사람들에게 이 식물들을 먹기만 해도 병원에 실려가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까지 심각하지 않다. 현재까지 이 채소들을 많이 먹는 지역에서 간 질환 발생률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한다는 역학 조사 결과가 보고된 바 없다. 어느 한 음식을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건 결코 이성적인 방법이 아니다. 이는 어떤 음식이 만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중국 옛말에 “보이는 곳에서 날아오는 창은 피하기 쉬워도, 몰래 쏘는 화살은 막기 어렵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옻나무과 식물에게 딱 맞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옻나무의 괴롭힘을 피하기 위해 조심하지만, 자칫 망고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망고도 옻나무과 식물이라는 걸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망고에도 우루시올이 미량 들어 있기 때문에 알레르기를 일으켜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열대과일의 왕인 망고를 좋아해도 민감한 체질인 사람들은 망고를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알레르기를 일으키기 쉬운 과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파인애플은 알레르기를 일으키기 쉬운 과일이다. 파인애플에 들어 있는 브로멜라인bromelain 때문이다. 파인애플을 먹기 전에 소금물에 담가 두었다가 먹으면 이 위험을 없앨 수 있다. 또, 단백질 분해 효소(프로테아제)가 적은 품종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서 알레르기 때문에 파인애플을 기피했던 사람들도 파인애플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신선한 고사리를 먹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직접 산에 가서 고사리를 캘 기회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데 고사리의 어린잎에는 시안화물이 다량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제대로 잘 처리하지 않으면 혀가 마비되거나, 심하게는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고사리는 쌀뜨물에 24시간 이상 담가 놓아야 한다. 그런 다음 끓는 물에서 살짝 데친 뒤, 고사리 특유의 아린 맛과 쓴맛이 없어질 때까지 다시 찬물에 최소 24시간 담가 둔다. 이런 처리 과정을 거쳐야 고사리를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



맨 처음 작명을 위한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미후도의 상품명을 ‘꼬마 멜론Mellonette’으로 정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있었다. 소리가 맑게 울리기도 하고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괜찮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 이름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과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국회에서는 수입한 과류瓜類 과일에 중과세를 징수했는데, 과일 상인들은 이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별도로 진행된 힘겨운 작명 회의를 거쳐 결국 뉴질랜드 국조인 ‘키위Kiwi’의 이름을 따서 미후도를 ‘키위Kiwi fruit’로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키위라는 이름은 의도적으로 지은 게 아니라 순전히 강요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붙여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는지, 키위는 단숨에 일약스타로 떠올랐다. 심지어 이 과일의 이름은 델리시오사였으며, 원래 고향이 중국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들었다.



왜 대다수의 채소와 과일에는 짠맛이 없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식물에게 나트륨은 생명활동에 필요한 원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식염의 짠맛은 염화나트륨맛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맛이다. 하지만 식물의 몸속에는 나트륨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과일과 채소에서 짠맛을 보기 힘들다.



월계수 잎에는 꽃향기와 나무향이 섞인 독특한 냄새가 강하게 난다. 향이 너무 강하다 보니 월계수에는 다다익선이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는다. 고기를 삶을 때 솥 하나에 월계수 잎 하나만 넣어도 충분하다. 너무 욕심을 부렸다가는 고깃국이 월계수국이 되고 만다. 내가 직접 겪어봐서 잘 안다. 어느 날 집에서 소고기를 삶으려고 보관한 지 오래된 월계수 잎을 꺼내 냄새를 맡았다. 향이 거의 날아가고 없길래 몇 개를 더 넣었더니, 솥 전체가 진한 나무 냄새로 가득 찼고 국물 맛은 살짝 씁쓸하기까지 했다. 소고기의 고소한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계화가 만개했을 때 활짝 핀 계화를 따서 불순물을 제거한 뒤, 진한 당즙(시럽)에 넣어 오랫동안 끓이면, 향기롭고 달콤한 계화 시럽이 된다. 겨울이 오면 연근이 부드러워지는데, 찹쌀을 연근 구멍에 채워 넣고 쫀득해질 때까지 찐 뒤, 잘라서 접시에 담아 그 위에 미리 준비해둔 계화 시럽을 뿌려주면 근사한 디저트가 완성된다. 연근의 부드러움, 찹쌀의 쫀득함, 계화의 향, 시럽의 달콤함이 한 데 어우러져 입과 위장을 달래준다
.



토마토
귀주산탕과에서 느껴지는 산미는 토마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토마토를 잘라 냄비에 넣고 끓인다고 해서 그런 맛이 나는 건 아니다. 토마토를 항아리에 넣고 맑은 물이나 쌀뜨물을 부어 3개월간 발효시키면 토마토가 푸딩처럼 야들야들해진다. 그 시큼해진 토마토를 건져서 훠궈에 넣고 끓인다. 토마토에 든 당이 발효를 거쳐 만들어낸 젖산lactic acid은 토마토의 신맛에 시원한 맛을 더해준다. 기름진 오강어烏江漁*를 곁들여 먹을 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토마토의 그 부드러운 촉감이란!

* 민물 연어가 주재료인 매콤한 쓰촨 요리



실제로 요과에는 상당히 ‘사나운’ 껍질이 있다. 요과 껍질이 사납다고 한 이유는 요과 껍질이 까기 힘들 정도로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요과 껍질에는 맹독성’ 요과각유腰果殻油, 캐슈넛 오일(CNSL)’가 함유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함유된 카르다놀cardanol을 대표로 하는 화학 물질이 사람의 피부를 침식시키는데, 이는 요과가 속한 옻나무과 식물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요과는 애초부터 독약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꽈즈를 먹듯이 요과 껍질을 깔 가능성은 전혀 없다. 처음에 껍질이 없는 요과를 판매했던 건, 사람들이 한 입에 먹기 편하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그러면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겠는가) 독성을 깨끗이 없애기 위해서였다.
껍질 벗기는 기계를 사용하기 전에는 여과 껍질을 벗기는 게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우선 요과를 햇볕에 말린 다음, 유독성 요과각유가 대부분 사라질 때까지 불에 굽는다. 껍질이 터져야 과인菓仁을 꺼낼 수 있다. 물론 껍질이 안 터졌을 때는 강제로 껍질을 벗겨내기도 한다. 장갑으로 보호하기는 해도, 껍질을 벗기던 노동자들이 독으로 인해 자주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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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가 맛있게 볶아낸 식물 이야기
植物子家的侠子和银针(2018)



도서관에서 대여한 전자책.


+
중국식 이름들이 재미있다.
내용이 어려운 이야기도 몇 개 있긴 했는데,
대체적으로 재미있었음.



++
그림은 류춘톈이라는 분인데,
아니, 사진인 줄? 튀어나올 것 같아!




+++
책 재미있게 읽고 있었는데,
거의 마지막에 이 문장 보고 와장창!
아ㅏㅏ...... 작가 아저씨요!

내 기준에서 중국 앵도(시장에서 하는 그 체리가 아니다)는 가장 섹시한 과일이다. 검붉은 색의 작은 열매는 미인의 붉은 입술을 연상시킨다. 미모가 쉬이 사라지듯 앵도를 따는 시간도 아주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