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옥상에서 만나요

uragawa 2020. 8. 14. 22:30

“언니, 결혼생활은 어때요?”
“굴욕적이야.”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기본적으로 잔잔하게 굴욕적이야. 내 시간, 내 에너지, 내 결정을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아. 인생의 소유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간 기분이야.”



어릴 때부터 성실했던 서른네번째 여자는, 결혼 적령기에 곁에 있던 사람과 쫓기는 마음으로 결혼했다. 몇 년이 지나고서야 이 숙제는 사실 하지 않아도 되는 숙제가 아니었을까, 의문이 찾아왔다. 다섯살 아래 여동생과 통화하다가 여자는 그런 이야기들을 했다.
“스무살 넘으면 어른인데 너무 아이같은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아. 입을 모아 내가 부족한 존재라 해서 정말 부족한 줄 알았어. 결혼을 해야 어른 취급받는 건 너무 이상하지 않니? 그래서 착각한 게 아닐까, 꼭 해야하는 숙제로. 너는 나처럼 생각하지 마. 요즘 비혼 이야기 많이 나오는 거 반갑고, 나도 이런 시대를 기다릴걸 그랬다 싶어.”
- 웨딩드레스 44



남편을 소환하려다가 멸망의 사도를 소환해낸 여자라니. 한심하기도 했지. 사랑에 대한 염우너이 아니라 똥 같은 회사에 대한 원망을 담아 빌었던 게 문제였을까? 도피 결혼에 대한 전근대적 저주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백 퍼센트 도피 아닌 결혼이 어딨겠어? 여자들에겐 언제나 도망 치고 싶은 대상이 있는걸.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도. 복받치게 억울했지.
나는 옥상에 시원하게 토했어.

-옥상에서 만나요



국제암연구소에 의하면 심야노동은 2급 발암물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돌연사의 원인으로는 몇위쯤 될까. 언니는 입사 이래 줄야근을 했지만 누간 그렇게 살기 때문에 티도 나지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해? 가족을 부양하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물었을 때 내 표정은 아주 나빴을거다. 언니 같은 능력이 있더라도 언니처럼 살고 싶지 않아, 그런 얼굴이었으리라.
“되게 바보 같은데, 사랑받는 기분이다? 클라이언트들한테 좋은 반응을 얻거나 무서운 윗사람한테 칭찬을 들으면, 프로답지 않게 갑자기 눈물이 글썽 고여. 나느 사랑도 꽤 받고 컸는데 왜 하필 그런 순간들에서 충족감을 느낄까? 미쳤나봐. 고장났나봐.”
-보늬



한국에서는 두다리만 건너면 안되는 일이 없었다. 어쩌면 세상 전체가 그렇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영원히 77 사이즈 



일이 잘되려먼 모든 게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잘되듯이, 일이 잘못되려 해도 마찬가지로 맞물려 잘못된다.
-해피 쿠키 이어 



“사는 게 너무 무서워서. 다음 휴직은 휴직이 아니라 퇴사가 될지도 몰라.”
근무환경이 열악하기로 유명한 회사에 들어간 민희는 몇년 지나지 않아 지병이 생겼다. 쉬었다 복귀했다를 벌써 몇번 반복했다. 회사에서 이런저런 압박이 있는 모양이었다.
“근데 파트너가 있으면 내가 다른 직장을 찾을 때까지 바통 터치를 할 수 있잖아. 요즘 주변에 많이들 그러던데. 서로 이직할 때 버텨주고. 나는 혼자 버텨야 해. 이러다 더 아파지면…… 혼자는 서럽고 무서워.”
“음, 그런 문제는 나라가 해결해줄 문제 아닌가?”
아영이 망설이다가 반문했다.
“나라는 별로 믿음이 안 가고, 40대……. 50대가 보이질 않아. 선배들 다 어디로 사라졌지? 우리 업계는 특히 더 심해.”



“그냥 , 결혼이 부동산으로 유지되는 거란 생각을 했어. 도무지 감당이 안되는 금액의 집을 사고, 같이 갚으면서 유지되었을 뿐인 게 아닐까. 그래서 한동안 동산만 가지고 살아보고 싶어서.”



“야, 여자는 어디서나 위험해. 어떻게 살아도 항상 위험해.”
-이혼 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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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2018)



도서관에서 대여한 전자책.


[웨딩드레스 44]

문장 웹진 2016년 8월호


...?????
이렇게 산만한 구성의 단편을 처음 등장시킨다고요?



[효진]

『창작과 비평』 2014년 겨울호


1인칭 시점인데, 듣는 사람 전혀 생각 안 하고
혼자서 주절주절하는 거
두 번째 단편까지 계속된다고???



[알다시피, 은열]

『1/n』 2010년 가을호


아.... 
세 번째 단편까지 재미없다고???????????



[옥상에서 만나요]

『문예중앙』 2012년 여름호


이게 책의 제목이 되는 단편이라 그런가, 앞에 세 단편이 재미없어 그런가
‘그나마 낫군.’

나는 옥상에 시원하게 토했어.

여기서 진짜 웃겨 죽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늬]

문장 웹진 2013년 6월호

 

언니가 죽었다.
돌연히, 갑자기, 순식간에, 불현듯, 눈 깜짝할 사이에, 그냥, 느닷없이, 금세, 한순간, 난데없이, 대뜸, 황망히, 별안간, 돌발적으로, 급작스럽게, 찰나에 죽어버렸다.

아- 첫 문장 이렇게 시작한다고? 이 책 그만 읽어야 되나 싶었는데
이 단편이 제일 재미있었어




[영원히 77 사이즈]
『묘생만경: 2010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 (거울 2010)

곶감, 곶감만 기억나는 이야기.



[해피 쿠키 이어]

『익명소설』 (은행나무 2014)

“자갈치?”
“아니야, 베이컨칩이야.”
“꽃게랑일지도 몰라.”
붉은 점을 동반한 칩 형태의 귀가 다시 돋아났을 때 선배들이 확대경을 들고 달라붙었다.

와, 제일 재미있었다.
귀에서 과자가 자란단 말이야 ㅋㅋㅋㅋㅋ



[이혼 세일]

『현대문학』 2018 8월호

부동산으로 유지되는 결혼이라는 말에 나는 200% 동의한다.
그리고 장아찌에는 누름돌이 중요하다는 것.




[이마와 모래]

『문학동네』 2016년 여름호

첫 페이지 읽고, 안 읽음.



‘아,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나’
생각보다 재미가 없어서,
친구에게 추천받은 [피프티 피플]을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데,
작가의 말을 보니

「보니」 와 「해피 쿠키 이어」를 합치면 『피프티 피플』이 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는데, 역시 한 주제에 대해 계속 다른 각도로 쓸 뿐인 것 같다.

그럼 저는 [시선으로부터,]를 읽고
[피프티 피플]에 한번 더 속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