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모스는 어머니가 그저 술만 마시는 망가져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녀 또한 상처를 받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누구든지 성인이 되면 똑같은 수렁에 빠지고, 그렇게 상처를 받고 나면 타인의 상처를 더 쉽게 알아보는 법이다.
블랙 베일에서 교관은 우리에게 아득한 시간의 수수께끼를 가르쳤다. 시공간 마디와 닫힌 시간꼴 곡선이라고 하는 드문 순간에만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며, 미래 또한 오로지 가능한 미래로만 여행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우리가 IFT의 현실에서 살아가는 동안, 현재의 현실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 말은 곧 IFT의 현실은 오직 관찰자만의 현실이란 얘기였다. 객관적인 현실이 될 수 없다.
오직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만이 현실이다. 굳건한 대지다. 그렇다고 IFT의 현실이 완전히 동떨어져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IFT에서 관찰한 결과는 분명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IFT는 아주 미묘하게 영향을 주어 현실의 흐름을 구부러뜨린다. 미묘할지언정 확실한 영향력이다. 막강한 중력이 빛을 구부리듯이. 이런 효과를 '렌즈 효과'라고 불렀다.
내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 모든 경우의 수로 정렬된 것으로, 매 순간 영원히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신나고 즐겁게'야말로, 진정한 선원이라면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 말이 아니던가요? 어떤 것도 사라지지 않고 어떤 것도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항상 존재합니다. 삶은 꿈에 지나지 않아요.
우리는 흙에서 자라, 세포를 증식합니다. 그러다 시들기 시작하고, 결국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죠. 그렇게 다른 많은 것이 우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 모든 육체와 죽음, 수십억에 달하는 인간의 삶이 마치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가 다시 밀려 나가요. 종교적 체험이나 신에 대해 떠드는 헛소리란, 정말이지 넌더리가 납니다.
모든 인간의 치명적인 결함은 우리 자신이 실재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는 거네. 자신이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할 때까지는 그렇게 믿지. 우리가 보는 모든 것,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고 말하지.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진짜라고 떠들어대는 거야. 하지만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야. 우리는 그저 환상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뿐이야.
사라진 세계
The Gone World(2018)
[트위터책빙고 2020]
23. 여성 탐정이 나오는 책
'시간 여행 허가'를 받은 최고의 여성 수사관이라는
설명 보자마자 구매해버린 책.
사실 실제 종이책 두께 보고 절레절레함.
두껍다 두꺼워...
+
시간여행이라고 하면
'내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굉장히 먼 미래를 여행한다'라고 생각하기 쉽기에
첫 챕터 2199년은
'와 이 책에서 하려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게 하는 매력이 확실했다.
++
첫 번째 시간 여행에서
1990년대에서 간다는 곳이 고작????? 2015-16년 임.
ㅋㅋㅋ
하지만 내가 아는 2015년 하고 좀 다르고요. (네, 네...)
이 챕터를 읽는 내내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는데,
시간 여행 후, 돌아오면서부터 나도 주인공 따라 지침.
진행되는 이야기가 초반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음.
메아리의 존재도 그렇고.
아오 힘들었다.
+++
책 소개를 보면
세계의 유일한 희망인 섀넌 모스는 유능하지만, 다리 절단 장애를 가진 여성. <사라진 세계>는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에 관한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장애인’ ‘여성’ 주인공을 낯설고도 혹독한 환경에 위치시킴으로써, 소수자의 삶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서사를 구성했다.
아니, 뭘 또 이렇게 그럴싸하게 포장했어.
소수자에 관한 문제의식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건,
애초에 이건 우선순위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봐야지-
그냥 여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만은 싫어 사고랍시고 장애를 쥐어준 것 같은 느낌은 나만 받았나??
시간 여행하면서 갖게 되는 노화만 핸디캡으로 줄 수는 없었냐고요.
이번 연휴가 아니었다면,
저녁마다 잠깐잠깐 읽었을 텐데, 그랬다면 2달이 되어도 못 읽었을 것 같다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