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uragawa 2020. 3. 26. 21:00

결혼은 친척을 두 배로 늘리고, 짐을 두 배로 늘리고, 싸움을 네 배로 늘린다.



당연히 책꽂이의 책은 전부 이중으로 꽂혀 있다. 뒤에 있는 책은 보이지 않으니 분명히 있을 책이 걸핏하면 행방불명되는 바람에, 아내에게는 시침 뚝 떼고 똑같은 책을 또 샀다. 하지만 그런 나쁜 짓은 물론 들키게 돼 있다. 도대체가 책의 형태가 문제다. 네모나고, 쌓기 편하고, 게다가 썩지 않는다. 임시로 한 권을 책 탑 위에 대충 올려놓는다. 이게 그 뒤의 행방불명과 붕괴로 이어진다.



가나와 함께 살게 된 아버지는 아침 일찍 청소와 빨래를 시작해 오전 중으로 집을 구석구석 깨끗이 치우고 나면, 전철을 갈아타고 경로 우대 할인이 되는 영화를 보러 가거나 백화점 국숫집에서 점심을 먹거나(가나를 우연히 만난 국숫집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라고 한다) 공원을 산책하고 그 김에 동물원에 가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거나 가나가 부탁한 장을 보거나 한다. 저녁이 되면 마음에 든 동네 주점에서 가볍게 요기하고 가볍게 마시고, 가나가 집에 올 즈음에는 직접 물을 받아 목욕하고 NHK의 <뉴스워치 9>를 보고 나서 취침. 이렇게 규칙적으로 생활했던 모양이다. 가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했고 간섭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와 딸이라기보다 셰어하우스의 주민 같은, 어딘지 모르게 담백한 관계였다.



디저트로 수박을 잘랐다. 작가가 편집부로 보내준 미우라 반도의 맛있는 수박이었다. 가나는 스푼을 쓰지 않고 초등학생처럼 직접 베어 물었다. 나도 똑같이 했다. 가나의 표정이 차츰 부드러워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들에게도 언젠가 배우자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나 자신은 이제 새로운 만남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우연히 호감 가는 여자가 나타난다 해도 그 뒤 식사에 초대하고, 두 사람의 개인사며 취향, 사고방식, 라이프스타일을 맞춰보고, 메일 등등을 주고받으며 호의를 전할 생각을 하면 다소 귀찮다. 타인과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갈 자신도 별로 없다. 나는 가족이 아니라 좋은 집을 원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인간은, 아니 적어도 나는, 필요한 상황이 되기 전까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올라 생기 있게 반짝이는 표정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의 가슴에 감동을 주며 깊이 스며드는 말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 언제나 그런 말과 표정이 넘치는 것은 아니다. 그 순간을 적당히 넘기기 위한 지혜로서의 말과 표정도 있다. 가나의 아버지는 그조차도 빼앗긴 것 같았다.



일은 싫지 않지만 쉬는 날은 기쁘다. 평소에는 토요일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서 맨 먼저 하는 생각이 ‘이번 주말에는 뭘 먹을까’다. 오늘은 다진 고기를 재료로 쓴 음식이 먹고 싶다. 만두를 잔뜩 빚어 저녁으로 먹을 분량만 내놓고 냉동하자. 두부와 토마토, 물냉이를 넣은 중국식 계란탕. 갓 지은 밥. 오늘 저녁은 그렇게만. 내일 아침은 버터를 듬뿍 바른 하얀 식빵에 계란 프라이. 온야채 샐러드. 밀크티가 제일 맛있는 계절이 돼서 기쁘다. 점심은 갓을 넣은 볶음밥에 꿀에 절인 매실 장아찌. 계란탕 나머지. 저녁은 가나가 가르쳐준 주점까지 걸어가서 파와 뱅어 샐러드, 새끼 양고기 구이, 돌김 리소토를 먹자.



이중으로 꽂아 책등을 볼 수 없는 대량의 문고본을 벽에 꽉 차게 짜넣은 문고본 전용 서가에 주르르 꽂는다. 단행본 서고라면 책을 읽을 공간이 30센티미터 가까이 줄어 다소 비좁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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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優雅なのかどうか、わからない(2014)



요즘 출 퇴근 할 때, 리디페이퍼를 들고 다녀서
킬링 타임 용으로 리디북스에서 대여했다.

[여름은..] 책은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은데,
이번 책은 생각보다 별로였어.
내가 너무 기대를 했나 봐

적당히 돈 벌었을 때,
혼자가 되어 즐기는 우아한 40대 이야기였다.
크흡,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구



+
이혼 하기 전, 5년 동안 바람피운 이야기를
뭘 이렇게 아름답게 별일 아닌 것처럼 나열했냐고,
이사 간 곳의 풍경이나, 예전 여자친구와의 관계
고양이까지 다 판타지였어...



++
인생은 혼자다.



왠지 다음에는 이 작가 책 안 찾아 볼 것 같다.




2016/11/25 - [한밤의도서관]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