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uragawa 2016. 11. 25. 20:21

목소리란 참 이상하다. 목적도 마음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키코의 온갖 것이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것 같고 그 모든 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사람을 잘 설득한다. 귀에 쉽게 들어오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여전히 설명으로는 다 할 수 없는 부분이 조금 남는다. 그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사람을 매료시킨다. 말의 의미 그 자체보다도 소리로서의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유키코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유키코의 목소리를 모아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남들한테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들어.” 마리코가 방긋 웃으면서 양 무릎을 끌어안았다. 정강이가 곧게 뻗어 있다.
“어떤 때?”
“싫은 것은 싫다고 분명히 말하고 말이지.”
“그런 것 갖고 고집에 세다고 하면 안 돼요.”
“그렇지만 그런 것 같아. 주위 눈에 신경쓰지 않고, 남들 앞에서 좋다 싫다 말하면 고집이 센 게 되나봐. 사카니시 군은 분명하게 싫다, 좋다 할 수 있어?”



“간단하고 간결하다는 것은 사람을 가리지 않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가 설명하지 않아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저절로 알 수 있으니까 말이야. 건축에서 사소한 장치를 생각할 때도 사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그 장치를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상적인 거야. 취급 설명서 따위 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훨씬 더 우위라고.”



망라해 모으는 것은 국회도서관의 역할이고, 현대도서관은 책과 만나기 위한 장소로 만든다.



“램프에만 의지하는 밤도 좋지. 밝은 방보다 이야기 하기 쉽고 말이야..” 선생님이 기분 좋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람들 얼굴은 바로 위에서 비추면 매력적이지 않거든. 흔들흔들한 빛으로 옆에서 비치는 것이 속이 깊은, 좋은 얼굴이 되지. 여자도 그쪽이 예뻐 보여. 조명은 밝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야. 오늘은 누가 저녁 담당이지?”



“사카니시 군이 지금까지 가본 도서관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어디지?” 콤백 체어에 앉은 선생님이 물었다.
“글쎄요.”
나는 빨갛게 타오르는 그릴 안을 보면서 생각했다. 학창시절에는 대학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다. 그러나 찾던 자료를 발견하면 그것으로 용건은 끝이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고향의 강가에 있는 작은 구립도서관에 자전거로 다녔다. 수험공부 때문이었다. 열람실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은 거의 학생이고 도서관은 책상과 의자, 공함과 에어컨 냉기를 제공해주는 장소에 지나지 않았다. 다니던 구립중학교에는 도서관이 없었다. 이층 끝의 비교적 넓은 교실이 도서실이라고 불리고 있었지만, 책장에 있는 책은 얼마 안 되고 한 번도 빌린 기억이 없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자 구립초등학교의 오래된 도서관에 도달했다.



선생님은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혼자서 있을 수 있는 자유는 정말 중요하지. 아이들에게도 똑같아. 책을 읽고 있는 동안은 평소에 속한 사회나 가족과 떨어져서 책의 세계에 들어가지. 그러니까 책을 읽는 것은 고독하면서 고독하지 않은거야. 아이가 그것을 스스로 발견한다면 살아가는 데 하나의 의지처가 되겠지. 독서라는 것은, 아니 도서관이라는 것은 교회와 비슷한 곳이 아닐까? 혼자가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야.”
어딘가에서 또 쇠딱따구리가 울었다. 끼이 하는 작은, 그러나 분명히 귀에 들어오는 소리. 도서관이 조용한 것은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기 때문이 아니고, 사람이 고독하게 있을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라면, 선생님은 그 공간을 어떤 형태로 만들려는 것일까.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주절주절 말할 때와, 멍하니 혼자 있을 때, 이불을 뒤집어 쓰고 훌쩍거릴 때, 여러 가지 상황에 놓이는 것이 인간이니까, 방도 거기에 맞춰 역할을 분담하는게 좋다, 고.



“정말로 죽기 살기로 억지 부리는 사람은 얼마 없어. 대단한 탁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남이 이렇게 생각하니까, 세상이 이런 것이니까, 그런 정도의 생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야. 그런 사람들은 이쪽이 각오만 섰으면 밀어붙일 수가 있지. 물론 어디까지나 자기 아집을 관통시키려는 사람도 있어. 그런 때 건축가로서의 신념이 문제가 되는거야.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가는 평상시 어떻게 해왔느냐의 연장선상에 있어. 여차하면 저력을 발휘할 생각으로 있어도 평상시 그렇게 하고 있지 않았으면 갑자기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사람한테는 주어진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나 시간이 남아 있는지 자기는 모르지만 그 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와요. 나는 매일 아침 오늘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내일이 이 세상하고 하직하는 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은 그런 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지만 사실은 똑같아요



건물은 사람이 원하고, 사람이 세우고, 사람이 사는 것으로, 사람과 건축가와 관계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건물 자체의 완성도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허물었던 몇 채의 건물은 모두 소유주가 바뀌고, 토지째 처분된 것뿐이었다. 건축이 잘됐다 잘못됐다 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건축의 경제적 가치는 이 나라에서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제로가 된다는 이야기다.



일은 사무소 안에는 없고, 여러분의 손안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