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uragawa 2019. 7. 24. 21:55

결혼은 사실 하나의 문에 불과하다. 결혼하지 않고 싶어졌다면 열려 있던 문을 닫아두는 것뿐이라고 말하자. 이유는 단순하다. 닫고 싶기 때문이다. 아마 닫으려는 문틈에 잽싸게 발을 끼우고, 혹시 모르니 열어둔 채로 두라거나 나중에 도로 열고 싶어지면 어쩔 것이냐고 묻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답도 간단하다. 그때 가서 도로 열면 그만이다. 등쌀에 못 이겨 잠자코 있다 보면 당연히 해야 할 결혼을 하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될 테니, 결혼하고 싶지 않으면 않은 대로, 결정하지 못하면 못한 대로 분명하게 의사를 표현하자.



여성은 항상 결혼하라는 압력을 받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결함이 있든지 규격에서 벗어난 사람 취급당합니다. 결혼한 여자는 남자에게 선택을 받은 여자, 여자로서 성공한 일종의 승자로 여겨집니다. 아무리 여성이 사회에 공헌하더라도 결혼해서 어머니가 되지 않는 한, 여성으로서 ‘제구실’을 하는 어엿한 어른으로 대접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자와 남자가 손해 보는 내용이 달라요. 결혼하면 여자는 시간을 잃고, 남자는 돈을 잃는다는 거죠. 정말 명쾌한 결론이에요. 여자가 시간을 잃는다고 느끼는 건 가사와 육아는 전부 여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결혼관 때문이고, 남자가 돈을 잃는다고 느끼는 건 남자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결혼관 때문이라는 얘기죠.



과거 30년간 기혼 여성의 취업률이 상승했지만 부부의 가사 노동 총량에서 아내가 85퍼센트를 담당하는 현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기혼 여성은 평균적으로 하루 다섯 시간 이상을 가사에 씁니다. 기혼과 미혼을 불문하고 성별로 봐도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의 다섯 배나 되는 시간을 가사에 쓰지요.

그래서 여성은 ‘시간 빈곤’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아는 사람이 많고요. 취직해서 일하는 시간뿐 아니라 무보수 가사 노동까지 포함하면 평균적으로 여성은 하루에 남성보다 한 시간가량 더 일하고, 전체 연령층으로 봐도 여성은 남성보다 수면 시간이 짧습니다.



사회가 기혼 여성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가사와 가정에 완벽한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돌봄 노동을 아내에게 완전히 맡기는 모델이죠. 저는 이것을 ‘고도 경제성장기 시대 아내 모델’이라고 부르는데, 일하는 남자와 가사를 완벽히 책임지는 여자의 조합을 유지하려면 여성은 전업주부를 지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에서 아내를 평생 전업주부로 있게 해줄 정도로 벌 수 있는 남성은 극히 적죠. 고도 경제성장기 시대 아내 모델을 지향하는 여성일수록 만혼이 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소득층은 경제적 이유로 가족을 못 만들고, 고소득층은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가족을 만들려 하지 않는 셈인데, 가족을 만들면 인센티브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이직 증후군’●이라고 천직을 찾아 이직을 되풀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여자도 있어요. ‘파랑새증후군’이라고, 이상을 좇아 일이나 학교·애인을 계속 바꾸는 식이죠. 인내심 없는 젊은이들이 자기가 하는 일은 안 될 리가 없다고 여기는 겁니다.
● 원어는 ‘트라바유トラバーユ 증후군’. 《트라바유》는 일본의 구직 정보지로, 트라바유 증후군은 천직을 찾아 이직을 되풀이하는 젊은이를 가리킨다.



사법시험 재수생을 뒷바라지하는 여성과 반대로, 여성한테 투자하는 남성은 좀처럼 없어요. 요즘 사법시험을 보는 여성이 늘었는데, 지원하는 사람이 남자 친구나 남편이 아니라 부모, 정확히 말하면 엄마예요.

배우자 선택 조건이 바뀌고 있어요. 남자들이 신부를 고르는 조건이 유럽이나 미국처럼 되고 있죠. 엘리트 남성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돈 벌 능력이 있는지 봐요. 복지국가의 유형을 제시해서 유명해진 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Gøsta Esping-Andersen●은 《끝나지 않은 혁명》(요스타 에스핑-안데르센 지음, 주은선·김영미 옮김, 나눔의집, 2014)에서, 싱글일 때 격차가 커플이 되면 배가 된다고 했어요. 부자끼리 결혼하는 경우와 가난한 사람끼리 결혼하는 경우에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는 거죠.



미나시타 ‘기생충 싱글’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자 친구와 동거하기보다 부모와 함께 사는 게 훨씬 쾌적하고 안전하다는 거죠.

우에노 생활수준이 높고, 엄마라는 주부가 딸려 있으니까요. 자식들도 “밥 줘, 목욕물 받아줘, 이제 잘래” 하는 식으로, 아저씨가 하는 생활 방식으로 사는 거죠.



모 대기업은 정년퇴직하면 바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그 기업의 정년 연령이 ‘죽음 타이머’라는 무서운 이야기가 떠돌고 있습니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일본 남성이 회사 제일주의인 것은 확실합니다.



제가 있는 육아 지원 단체에서는 한때 후쿠시마에 사는 여성을 오키나와로 피난시키는 걸 도왔습니다. 그때 후쿠시마의 여성들은 여러 가지로 힘들었어요. 엄마들은 아이를 생각해서도 잠시나마 피난하고 싶은데, 지역사회에서 “모두 힘든데 너만 도망가느냐”면서 잡아둡니다.



저는 베이비 붐 세대 남성들한테 이렇게 말해요. 당신들이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대와 성별이 유리하게 작용해서 고학력을 갖춘 것뿐이니, 자기 능력이라고 착각하지 말라고요.



미나시타 《한부모 여성 가장의 빈곤》을 쓸 때, 그나마 이혼할 수 있는 여성들은 친정 엄마가 아이를 봐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인터뷰한 한부모 여성들은 비교적 혜택을 받은 환경에 있었지만, 대다수 한부모 여성 가장은 가난합니다. 80퍼센트가 넘는 한부모 여성 가장이 일을 하는데 절반 이상이 빈곤하죠. 이런 참담한 상황이 통계로 나왔습니다.



미나시타 제가 충격을 받은 사건이 있습니다. 저희 아이가 두 살이 안 됐을 때인데요, 수유실에 가니까 거기에 한 아기와 엄마가 있었어요. 그런데 대여섯 살 된 남자애가 달려오더니 “엄마, 바퀴벌레 왔어요” 하는 겁니다. 제가 수유실에 바퀴벌레가 나왔나 살펴보려니까 밖에서 애아버지가 오지 않겠어요? 이 가족은 아빠가 없는 곳에서는 아빠를 바퀴벌레로 부르는 겁니다.



또 하나 충격적인 사건이 있습니다. 전철에서 제 옆에 앉은 중년 여성 세 명이 수다를 떨었어요. 승객이 별로 없어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죠. 한 사람이 “그 사람 남편 말이야, 정년퇴직한 직후에 죽었다더라고” 하니까, 나머지 두 명이 “정말?” 하고 묻는 겁니다. “아이고 어쩌나, 안됐다” 이런 말이 이어지겠지 생각했는데, 두 사람이 “부럽다” “내 꿈이야” 하는 겁니다.



아이를 돌보려고 일하는 방식이나 일 자체를 바꾸는 것은 여자예요. 결혼하고 첫째를 출산하면 정직원인 여성 75퍼센트가 파트타임이나 계약직으로 바꾸거나 일을 그만둡니다. 거꾸로 보면, 남자가 그만큼 일하는 방식이나 일을 바꾸지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남자에게 소속된 여자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이를 원하는 여자는 누구나 낳을 수 있고, 낳고 싶지 않은 여자는 그 때문에 비난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가 ‘아이를 낳을 권리, 동시에 낳지 않을 권리’를 얻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이를 낳으라고 강요받지 않고, 아이를 안 낳았다고 해서 불이익이나 비난도 받지 않는 사회, 그런 권리를 얻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려고 합니다.



결혼하지 못하는 ‘패배자’라고 이야기할 때 무조건 여성을 연상하죠. 비혼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왜 남성은 연상하지 않을까? 저는 전부터 이 문제를 놓고 정신과 의사 사이토 다마키 씨와 논쟁해왔어요.



요즘 패배자 남성이나 패배자 여성은 자신을 ‘상남’ ‘상녀’라고 하는데요, 남녀 앞에 인기가 없다는 뜻으로 ‘잃을 상喪’ 자를 붙인 말입니다. 자학하듯 인기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게 이 말이 전하는 핵심이죠. 상남·상녀라고 들어보셨나요?



미나시타 사카이 준코 씨는 패배자 여성이 서른 살 이상, 아이 없는 미혼이라고 했습니다. 남성 역시 사회적으로 아무리 성공해도 서른이 넘고 결혼하지 않고 아이가 없으면 패배자로 여겨진다고 볼 수 있을까요?

우에노 지금까지 패배자 남성이 누구인지 정의한 사람은 없어요. 문제로 만든 사람이 없으니까 뭐라고 말할 수가 없군요.



그런 자기중심적인 망상이 남자들의 병리 가운데 하나예요. 남자라는 사실 하나로 노력하는 것 없이 인정받을 수 있다고 여기죠. 여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인정해주는 여자가 좋은 거예요. 자기가 남자이기 위해서 여자가 필요한 거고요.



미나시타 인기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 인기가 없는 사람이 살아가도록 사회가 허용하지 않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연애하고 결혼하는 풍속이 뿌리 깊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이성과 연애도 결혼도 못 했다. 그래서 뭐가 잘못됐냐” “대체 뭐가 문제냐”고 받아치며 살아갈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우에노 그런 비난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어요. “가족이 위기”라고 말하면, 그걸 말한 사람이 ‘가족 파괴자’로 몰리는 식이죠. 그전에 가족이 망가졌는데 말이에요. 불편한 진실을 말한 사람이 가족 파괴자라고 오인되죠. 이런 상황은 줄곧 있었어요.



경제 수준이 같아도 인간관계 같은 사회적 자본이 있느냐 없느냐로 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전혀 달라진다고요. 정말 맞는 말이에요. 싱글로 노후를 보내는 것도 똑같아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낸다는 것이 고립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싱글이라도 만날 사람이 있으면 됩니다. 그러려면 노하우와 스킬이 필요한데, 이것은 배우면 돼요. 제가 아는 사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혼자 지낸 시간이 긴 이들은 사람을 만나 사귈 때 노력을 해요. 오히려 가족이 있는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은 가족을 잃으면 어떻게 될까 걱정스러울 정도예요.



우에노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전에 사카이 준코 씨가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浅田真央 선수를 비교해서 칼럼을 썼죠. 둘의 대결에서 누가 이길지 예측하는 내용인데, 정말 글을 잘 썼어요. “필시 마오 선수가 질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가 “이길 거라고 투지를 활활 불태워도 이길까 말까 한 게 스포츠 세계인데, 마오 선수는 매번 겸양과 같은 여성의 미덕을 체화한 듯한 인상을 풍긴다”는 거였죠.



지금 일본에서는 여성의 활약이랍시고 종전의 가족 규범을 잘 지키면서 출산도, 육아도, 일도 잘하는 여성을 기대합니다. 자민당은 저출산 대책이랍시고 조부모와 부모·자녀 삼대가 거주하면 보조금을 준다면서 여성이 시부모와 살며 돌봄 노동까지 해야 하는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여성은 지금도 벅찹니다. 잠도 못 자고 시간을 쪼개 써도 부족할 정도죠. 무상 노동인 가사 노동과 유상 노동인 집 밖의 노동에 드는 시간을 합하면, 선진국 가운데 일본 여성의 노동시간이 가장 길어요. 지금도 여성은 힘에 부친데, 출산이나 육아를 결심하는 경우 그 심리적·경제적 부담까지 여성한테 편중됩니다.



나는 일본이란 국가가 국민의 삶이 어떤지 그 내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희생만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세대가 이토록 살기 힘든 사회가 됐는데, 이토록 아이를 키우기 힘든 사회가 됐는데, 껍데기만 남은 가족 규범에 집착한다.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한다고 기치를 내걸었지만, 실상을 보면 극히 균질적인 생활만 허용한다. 그 뿌리에 있는 상상력의 빈곤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