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서점의 일생

uragawa 2019. 6. 17. 22:00

책방은 입장이 공짜다. 달리 말하면 갤러리나 마찬가지다. (책방 주인이 되고 보니 그게 서러워질 때도 있다. 처지에 따라 이렇게 바뀌다니) 그렇기에 호기심이 왕성한 꼬마가 날마다 드나들었던 것이겠다.
문턱이 낮고 공짜에 자극적 정보가 넘쳐나는 곳. 이제는 개인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새로운 정보나 낯선 세계에 접속하는 시대다. 그런 기기로 더욱 멀고 깊은 세상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오감으로 느끼는 체험이 없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보내는 날이 허다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담담하게 자유를 구가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파악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쉬는 날이면 홀로 거리를 나서 걷다가 피곤하면 집에 돌아온다. 도심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먼 존재였다. 신주쿠, 시부야, 시모키타자와, 하라주쿠 같은 곳에는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밖에 놀러 가지 않았다. 나한테 그런 곳은 피곤한 동네일뿐이다. 아사쿠사, 진보초, 우에노를 자주 돌아다녔다. 젊은이들만 들끓지 않는 거리가 좋았다. 그런 거리를 워크맨을 들으면서 걸었다.
젊은이라는 유예 속에서 마음 둘 곳도 미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20대 초반에는 ‘어떤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했지만, 서른 살이 가까워지자 생활을 위해 공사를 구별하려 했다. 결과적으로 늘 나에게 맞지 않는 직장만 골랐다. 그런 반성도 포함해 조금씩 흥미가 있는 일로 먹고살아 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도서총판이라는 말을 알고 있다면 서점업계에 조금 밝은 분일지도 모르겠다. 총판이란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전국 출판사가 만든 책을 한 곳에 모아 서점에 제공하는 유통사이다. 그렇게 해서 서점은 매입처를 간략화할 수 있다(실제로는 서점이 각 출판사에 직접 주문하는 경우도 많지만).



책이란 쌓아 올리면 상상 이상으로 무거워지므로 일반 가재도구는 금방 나무가 내려앉아 버린다고 했다. 나는 내 방의 저렴한 책장이 변형된 것을 떠올리고 납득했다. 그리고 책방이라면 장사를 하기 위해서나 매력적인 가게를 꾸리기 위해서도 어느 정도 재고량을 갖추어야 하는데, 가재도구는 원래 책을 진열하기 위해 설계된 가구가 아니므로 실제로 책을 얼마 진열하지 못한다고 했다.



가게를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인세로 생활하는 이들을 먼저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의 센스나 재능을 상품으로 구현하고 세상에 내놓아 그 대가나 평가로 임금을 창출한다. 즉 그 사람밖에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에서 돈이 발생한다. 물론 상품이 되기까지는 많은 사람과 회사를 경유하지만, 기본이 되는 독창성은 작품을 만들어 낸 사람 개인에게 있다. 그것은 달리 대체하기 힘든 재산으로 대부호가 아무리 돈을 내도 재능 자체는 살 수 없다. 어떤 개성을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을 흉내 낼 뿐 똑같이 응용할 수는 없다. 세상에 어느 하나 똑같은 개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애쓴다 한들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그런 자신의 유일무이한 개성을 상품화해 지지를 받고 생활까지 하는 사람이란 인간의 형태를 한 기업이자 점포이기도 하지 않을까.



가게는 시작보다 지속이 압도적으로 어렵다. 운 좋게 개점 자금을 준비한다 해도 돈이란 금방 없어져 버린다. 얼마다 궁리하여 운영 자금을 회전시킬지가 그 사람의 진짜 역량이다.
특히 개인 가게는 점주의 마음이 약해지면 바로 끝이다. 잠시 안정된 매출을 올린다 해도 점주의 동기 부여가 없어지면 순식간에 끝을 맞이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이 자기 의지 하나 믿고 맨 손으로 시작한 일이므로 누구도 말릴 수 없고 누가 매출을 올려 주는 일도 거의 없다.



내 가게를 갖는다는 것은 나아갈지 물러날지를 포함한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다. 상호는 물론이고 이미지, 상품 선별, 돈 관리법, 종업원 간의 규칙, 서류양식, 트러블 처리 등 아침부터 밤까지 크고 작은 일들을 선택해야 한다.



띠지가 있어야 내용이 부각되는 책은 반드시 가장 앞. 옆에는 폭이 조금 좁은 책을 놓는다. 너무 빽빽하면 손님들이 진열장으로 돌려놓을 때 띠지가 걸려 찢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띠지가 있는 책 여러 권을 철제 진열장에 펼쳐 진열할 때는 두 번째 책부터는 반드시 위 아래를 거꾸로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님들이 책을 진열장에 돌려놓았을 때 띠지가 100퍼센트 구겨지기 때문이다.
그림책의 띠지는 기본적으로 모두 벗긴다. 비주얼을 해치는 띠지가 많기 때문이다. 그림책의 흥미 유발은 표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디자이너에 따라 콘셉트가 이미 완성된 것이 많다. 그래서 표지를 제대로 보여 주어야 존재감이 산다.



나는 책방이 사상을 컨트롤해 책을 선별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반대 사고의 책을 옆에 진열하기도 한다. 아무리 셀렉트숍인 척해도 결국 책을 선별하는 이는 항상 손님이다.



하지만 어느 날 계산대에서 손님을 보다가 인간이 결국 흥미를 갖는 것은 ‘성과 죽음’밖에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 가게에 진열해 놓은 책 중에서 팔리지 않지만 가장 많이 서서 읽는 것은 섹슈얼한 책이다.



모월 모일 흐림
좋은 것과 만나면 좋은 것을 만들고 싶어진다. 좋은 문장, 좋은 영화, 좋은 음악, 좋은 그림, 좋은 만화, 좋은 사람, 좋은 가게.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상관없이 좋은 것을 만들고 싶다는 윤곽이 생긴다. 그 윤곽의 내용물이 뚜렷해질 무렵 좋은 것은 어느새 완성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시야는 정말 좁다. 단골손님이 몇 년이나 팔리지 않던 책을 계산대로 가져오기에 “이제 이런 책을 읽으시나요?”하고 물어보니 “이 책이 전부터 있었던가요?” 하고 되묻는다. 그런 일이 가끔 있다. 우리처럼 재고가 적고 대부분 표지 진열로 어필하는 곳에서도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대형 서점은 더할 것이다.



‘발견 구매’라는 것이 있다. 아무런 목적을 정하지 않고 책방에 가서 거기에서 만난 책을 처음 보고 사는 것을 이른다. 이는 제안형 서점인 개인 점포만의 구매 방법이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이 경쟁 상대라면 사실은 모든 오프라인 서점을 즐기는 법이기도 하다. 검색이 아닌 우연한 만남. 현재는 이미 목적하는 책에 곧바로 도달하는 시대이다. 책방에 부탁하지 않아도 직접 손쉽게 주문할 수 있다. 생각지도 못한 책과의 자극적인 만남이란 목적 외의 구매 속에 있다. 그것을 공간으로 제공하는 것이 오프라인 서점의 강점이다.



쉬는 날은 대부분 책을 읽는다고 하면, 평소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감탄하거나 똑똑할 거라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나에게 책은 오락이다. 독서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처럼 몽상을 즐기는 시간이다.



요즘 시대에 상품을 단 하나도 스스로 고르지 않는 가게를 꾸려 간다는 건 난센스이다. ‘셀렉트’라는 특별한 느낌을 앞에 내걸고 홍보할지는 점주의 취향 문제다.



독립출판물과 무료로 배포하는 프리페이퍼와의 수준 차이도 경계가 모호하다. 프리페이퍼인데 ‘와! 이렇게 훌륭한 데 무료라고?’ 할 만한 멋진 것이 있는가 하면, 가격이 매겨진 독립출판물인데도 ‘이런 책을 누가 돈 주고 살까’ 싶은 것도 있다.
우리 책방에서 팔아 달라고 가져오는 많은 책 중에서 취급할지 말지는 우리 가게 손님들 성향에 달렸다. 상품의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맞는지 맞지 않는지 판단한다. 나는 작품보다 ‘상품’으로 종합적인 균형이 맞는 책을 고른다. 얼른 보기에 센스가 있고 세련된 책보다는 어딘가 덜 떨어진 데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애교나 유머, 비평성이 있다면 균형이 잡혔다고 본다. 매력적인 상품은 후자가 많다.



최근 몇 년 사이 책을 읽는 사람이나 책을 사는 사람이 줄었는데, 책을 만들고 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나는 현상이 있다.



책은 아주 편리한 아이템이다. 그 책을 실제로 읽지 않아도 책장에 진열해 놓는 것만으로 멋있어 보인다. 이를테면 친구나 애인이 내 방에 놀러올 때 내가 이렇게 보였으면 하는 책을 책장에 꽂아 두면 전혀 읽기 않았어도 자신을 위장할 수 있다. 책이란 것에 교양적 환상이나 인테리어 요소가 포장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아는 사람은 깊이가 없는 위조품을 급조했다고 금방 눈치 챈다. 새로운 책방 책장에서도 가끔 그게 눈에 띈다.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감각과 균형이다. 균형 감각은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는 기준이며 일을 진행하는 타이밍이나 그만둘 때 등 나 자신의 세상에서 행동을 정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한편 감각은 그 사람의 특성 같은 것이다. 옷에 감각이 없어도 음악 감각이 있는 사람, 노름 감각이 없어도 축구 센스가 있는 사람처럼 적격 부적격의 문제와도 닮았다. 문화적인 감각은 반드시 무언가의 영향하에 있지만, 이를 단순히 복제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멋진 감각이다.



지금 생활보다 힘든 문제가 또 생겨나겠지. 일이란 기본적으로 인간관계다. 이전에 나도 회사원을 해 봤는데 좋은 인간관계의 직장운은 없었다. 그런 것을 정말 다시 견뎌낼 수 있을까?



독립출판이건 상업출판이건 관점이 재미있거나 포장이 보기 좋은 책이 잘 팔렸다.
아무리 잘 팔리던 책도 어떤 시기를 지나면 움직임이 둔해진다. 그렇게 되면 주전 자리에서 탈락하여, 책꽂이에서 빠지고 새로운 책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것이 반복되는데 시간을 두고 예전에 잘 팔리던 다시 책꽂이에 올려놓으면 또 팔리는 일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