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파랑의 역사

uragawa 2019. 6. 16. 21:26

아주 오랫동안 검은색과 흰색은 완전히 다른 색으로 여겨져 왔다. 색의 스펙트럼과 거기서 관찰되는 색의 배열은 17세기 이전엔 알려지지 않았고, 원색과 보색 사이의 경계도 이때 서서히 나타나 19세기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인정받았다.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의 대조도 순전히 인습적인 것이며 시대와 사회의 따라 다르다.(예를 들어, 중세 때는 파란색이 따뜻한 색이었다.) 스펙트럼과 색상환, 원색의 개념, 색의 동시적 대비 현상, 망막의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의 구분 등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변화하는 역사 속의 한 지식적 단계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고대인들은 모래와 잿물에 섞은 구리 가루를 주원료로 하여 인위적인 청색 안료를 만들 줄도 알았다. 특히 이집트인들은 이러한 구리 규산염을 이용하여 아주 훌륭한 색조의 청색과 청록색을 생산해 냈는데, 이 색들은 장례 용품(작은 상, 소형 인물상, 장신구용 구슬)에 나타나며, 흔히 투명하고 고급스러운 효과를 내기 위해 유리 광택제가 덧칠되어 있었다. 근·중동의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이집트인들에게도 청색은 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번영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색으로 여겨졌다. 또한 청색은 장례 의식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저승으로 간 고인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청색은 밝을 톤일 때는 보기에 흉하고 어두운 색일 때는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에, 흔히 죽음이나 지옥을 연상시켰다. 파란색의 눈을 가진 사람은 거의 추하다는 취급을 받았는데, 여자는 정숙하지 못한 것으로, 남자는 여자 같은 나약한 인상에 교양이 없거나 우스꽝스러운 사람을 여겨졌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러한 속성들을 연극으로 우스꽝스럽게 풍자하는 것을 즐겼다.



문학작품에서의 색의 암시 체계를 볼 때 놀라운 것은 13세기 중반까지는 청색의 기사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때까지 문학작품에서 청색이 의미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어쨌든 문장학상으로나 상징체계로 보나 이런 종류의 문학작품에 청색이 등장하기는 너무 이른 시기였다. 당시 이야기에 청색 기사가 갑자기 출현하는 것은 독자들에게나 청중에게서 아무런 공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까지 사회규범이나 상징체계에서 청색의 위상은 확고한 상태가 아니었으며, 기사도 문학의 주인공이 모험길에서 마주치는 기사들을 색깔로 암시하는 체계는 청색이 인기를 얻기 저에 이미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4세기가 되면서 기사도 문학에서의 이러한 색의 사용은 약간의 변화를 겪는다. 14세기 중반 즈음에 쓰인 무명작가의 대작 『페르세포레스트(Perceforest)』가 최초의 증거자료다. 그때부터 검은색은 악한 쪽으로 해석되고, 반대로 붉은색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충성스럽고 성실한 인물인 청색 기사가 존재하게 되었다. 처음에 이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로 취급되었으나 점점 중요한 주인공들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1361년에서 1367년 사이에는 프랑스 궁정시인 프루아사르가 『청기사의 이야기 시』를 짓게 되었다.



염료 제조에 관한 이론서들에서 놀라운 점은 14세기 말까지 이 제조법의 4분의 3이 붉은색 염료 제조에 할애됐다는 사실이다. 그 이후에는 청색 염료 제조법의 수가 꾸준히 늘어나, 18세기 초에는 염색 교본들에 나타난 청색 제조법의 수가 붉은 색을 앞지르게 되었다. 이 같은 변화는 회화에 관한 책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르네상스까지는 붉은색 물감 제조법이 주조를 이루다가 그 후 청색이 붉은 색과 경쟁하게 되고, 결국 청색이 압도한다. 이러한 청색과 적색의 경쟁은 그저 일화적인 사건이 아니라, 12~13세기 이후 서양 사회의 색에 대한 감수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색의 사용을 아주 단순화하여 사회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계층을 대상으로 연구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흰색과 검은색은 따로 쓰이든 같이 쓰이든 비참한 상황에 있는 이들이나 불구자들, 특히 나병 환자들을 구별하는 데 쓰였다. 빨간색은 사형 집행인과 매춘부, 노란색은 거짓 맹세한 자와 이단자와 유대인에게 쓰였다. 초록색은 단색으로 혹은 노란색과 배합되어 악사, 곡예사, 익살 광대나 미치광이 등에게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에 들어맞지 않는 예도 많다. 예를 들어 매춘부들의 경우엔 일반적으로 빨간색이 그들을 상징하는 색깔이었다(이들의 신분 차별 표시는 도덕적인 기능뿐만 아니라 세무와도 관련이 있었다. 그것은 도시에 따라 혹은 수십 년마다 일어나던 변화에 따라 드레스, 어깨끈의 장식, 스카프, 두건, 외투 등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파란색이 선호되기 시작하기 시작한 것은(색에 대한 선호도는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온 바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2세기에 청색은 신학적으로 중요시되었고 예술적으로도 그 가치가 상승했으며, 13세기에는 염색업자들이 아름다운 청색 염료를 만들어 냄으로써 청색의 인기 상승에 공헌했다. 그리고 14기 중반부터는 문장학(紋章學)적으로 중요한 색깔이 되었으며, 그로부터 2세기 후인 16세기에는 종교 개혁에 발맞춰 도덕적 차원에서 경건한 색이 되었다. 그러나 청색이 결정적으로 승리한 것은 18세기에 들어서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오래전부터 알려졌으나 사용하는 데에 있어 자유롭지 못했던 천연 염료인 인디고를 폭넓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인디고는 마디풀과에 속하는 다양한 초본 식물의 이에서 얻을 수 있는데, 유럽에서는 전혀 생산되지 않는다. 인도산과 중동산은 수풀에서 자라고 높이가 2미터를 넘지 않는다. 가장 위쪽에 나는 제일 어린잎에서 대청보다 훨씬 강한 인디고틴이 채취된다. 이 인디고틴으로 견, 모, 면직물을 짙고 선명한 파란색으로 염색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염료가 직물에 잘 스며들도록 해 주는 매염제를 다로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보통 염색을 하기 위해서는 천을 인디고 염료가 든 통 안에 집어넣었다가 꺼내서 바깥공기에 말리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오늘 날의 병원이 벽이 파란색으로 칠해지고, 신경안정제 종류의 모든 약들이 파란색으로 포장되며, 도로 교통 표지에서 허가를 의미하는 모든 것은 파랑으로 표시된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온건하고 합의적인 입장을 표현하는 데는 파란색을 많이 쓴다. 파란색은 공격적이지 않을뿐더러 어떤 것도 위반하는 일이 없으므로 안정감을 주고 결집시키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