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나오미와 가나코

uragawa 2019. 6. 13. 00:55

나오미가 경험한 일 중에서 제일 놀라웠던 것은 시내에서 운전하다가 추돌 사고를 일으킨 사장 부인이 패닉 상태에 빠져 외판부에 도움을 요청한 일이었다. 이때는 담당자인 나이토가 경찰보다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사고 처리를 하고 피해자와 담판을 벌였다. 감격한 사장 부인은 그 후 나이토로부터 1천만 엔 가까운 보석과 명품을 구입했다. 충성, 신뢰 관계,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 이것이 백화점 외판부의 순환 구조였다.



“내 생각인데 남자는 마음 어딘가에 마누라를 심부름꾼처럼 여기는 구석이 있어요. 자신의 기저귀를 갈게 하다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탁할 일은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 기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거예요. 아니, 그 이전에 일하고 있을 때라면 몰라도 정년퇴직한 후에도 집안일을 전부 마누라한테 맡기면 어쩌자는 거예요. 너무한 거 아닌가요?”



내년이면 서른이 된다. 한참 후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어느덧 ‘젊은 여자’라는 마법의 카드는 쓸 수 없게 됐다. 아직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했는데.
이십 분 정도 꾸물대며 시간을 보내다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창으로 가서 커튼을 젖히자 풍경 전체가 회색이었다. 다마 강 옆의 제방에는 우산을 쓰고 개를 산책시키는 노인 한 명뿐, 그리고는 완벽히 아무도 없었다.

창을 열고 환기를 했다. 싸늘한 공기가 기분 좋았다. 생각할 게 많은 날에 딱 어울리는 날씨였다.



여자에게 차도는 약육강식의 세계처럼 보였다. 차를 운전하고 싶지 않은 여자가 많은 것은 그곳이 남성 사회라 배려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조금만 멈칫거려도 곧바로 클랙슨을 울려댄다. 여자가 운전하는 것을 보면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린다. 분명 쇠로 된 커다란 상자를 조작하면서 남자들은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 기분일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의 아버지도 핸들을 잡고 있을 때는 다른 차들을 보며 ‘운전도 못하는 것들이!’ 하며 늘 욕설을 퍼부었다. 이제부터 그런 세계에 뛰어든다고 생각하니 나오미는 진심으로 우울해졌다.



적당한 감정이 떠오르지 않았다. 공허함과는 또 다르게 시커먼 마음이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체 언제부터 자신은 이렇게 됐는지 그것조차 아득히 먼 옛날처럼 생각되어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오늘이라는 날을 맞이하게 될 운명이었던 게 아닐까 하고, 마치 궤도를 벗어난 것처럼 사고는 점점 더 확산되어갔다.사람 하나를 세상에서 제거했다는 점에 관해서는 여전히 상상했던 만큼의 죄책감이 들지 않아, 인간은 의외로 냉혹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나오미도 마찬가지였다. 정색하고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날 밤 일을 후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인간은 자신을 정당화할 수 있는 스위치를 가지고 태어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