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다시, 그림이다

uragawa 2019. 3. 26. 23:00

런던에서 야심만만한 작품을 제작한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그곳은 충분한 공간도 없는 데다가 주의를 흐트러뜨리는 것들이 너무 많았지요. 하지만 여기서는 하루 24시간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나를 사로잡지 않습니다. 그림 그리는 시간 외에는 독서를 합니다. 런던에서는 항상 손님이 있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머무르는 것을 좋아합니다만, 이곳은 방문하기에 너무 불편한 곳이니까요. 나느 반(反)사회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비사회적일 뿐이죠.



이곳에서는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이 나를 위해 자라납니다. 이는 아주 거대한 주제이고, 내가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자연의 무한한 다양성 말입니다.



무엇인가를 바라볼 때 자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항상 이와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물을 훨씬 더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미지는 생리학적인 방식을 따라 당신을 스쳐 지나가 당신의 뇌와 기억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 저장되어 있다가 당신의 손에 의해 전달됩니다.



전에 나는 침대 옆에 캔버스를 두고 거기에서 작음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불이 켜지자마자 방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감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아이폰으로는 어둠 속에서도 그릴 수 있습니다. 빛이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이폰은 어두운 곳에서는 잘 볼 수 있지만, 밝은 빛에서는 잘 볼 수 없습니다. 빛 그 자체가 많은 아이폰 드로잉의 주제입니다. 덧문이나 밝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 말입니다. 나는 침대에서 새벽과 꽃병을 많이 그립니다. 방에는 멋진 창문이 있고 꽃들이 있으며 빛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일 년 중 이맘때에는 해가 내 침실 쪽을 비춥니다.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면 나는 일어나서 커튼을 걷습니다. 지금은 해가 오전 4시 20분에 뜹니다. 그리고 해 뜨기 한 시간 전 정도부터 밝아집니다. 구름이 약간 있으면 드라마를 볼 수 있습니다. 붉은색 구름과 그 아래에 있는 광선 말입니다.



나는 욕심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돈에 대해서는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돈은 짐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흥미진진한 삶에 대해서는 욕심을 냅니다. 나는 삶이 항상 신나기를 바라고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물웅덩이에 떨어지는 빗방울에서도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지요. 나는 쓰러지는 날까지 신나는 삶을 살 작정입니다.



화가는 단순히 캔버스나 종이에 점점 더 많은 물감을 덧칠하는 것이 아니다. 참신한 생각과 관찰을 계속하면서 각각의 생각과 관찰을 통해 이전의 것들을 조정해나가는 것이다. 주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면서 이전에 쓴 것들을 수정하고 추가해나간다는 점에서 글쓰기 과정과도 본질적으로 유사하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많은 경험은 층 쌓기다. 층 위에 또 하나의 층을 쌓는 것처럼 우리는 과거와 비교하면서 현재를 이해하고 그 이후로 더 많은 층을 더해가며 현재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우리의 관점은 변해간다.



투명함을 그리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시각적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것이니까요. 수영장을 그린 회화 작품은 투명함이 그 주제였습니다. 즉, 물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훌륭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영장은 연못과는 달리 빛을 반사합니다. 내가 수영장을 그리는 데 사용한, 그 춤추는 것 같은 선들은 실제로는 물의 표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래픽적인 도전이었습니다.



우리는 아홉 대의 카메라로 안개 낀 아침의 영상을 많이 촬영했습니다. 안개는 더 많은 것을 보게 해줍니다. 아침에 안개를 촬영한 적은 거의 없었지만 몹시 아름다웠습니다. 매우 다양한 범위의 녹색과 카우 파슬리(cow parsley, 아주 작고 흰 꽃이 많이 피는 야생화)를 더 세부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화창한 날이었다면 다소 밋밋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안개는 풍경에 중요한 것을 부여해줍니다. 아름다운 옅은 녹색이 안개를 뚫고 펼쳐지고, 몇몇 장소에는 다양한 종류의 녹색이 있어 여러 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안개 낀 아침은 매우 드뭅니다. 그때 나무들은 대단히 멋진 형태를 보여줍니다. 또 위에 있는 해와 아래에 있는 그림자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나무의 부피감을 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 있습니다. 나무둥치를 비추려면 해는 아주 낮아져야 합니다. 그때 나무를 강렬하게 볼 수 있습니다. 나무 안에 있는 깊은 그림자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브리들링턴에서는 그러한 광경을 오전 6시 무렵에만 볼 수 있습니다.



아홉 대의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과 카메라로 보는 것 사이의 상당한 차이를 극복하게 해준다. 그것은 움직이고 노출에 있어서는 유연하다. 예를 들면 눈은 빛의 다양한 조건 등에 카메라보다 더 빠르게 적응한다. 그래서 힘들이지 않고도  밝고 선명한 하늘을 올려다본 뒤에 깊고 어두운 덤불 속을 응시할 수 있다. 사진 한 장은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아홉 장의 사진으로는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