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메리 수를 죽이고

uragawa 2019. 3. 21. 22:30

어쩌면 성장이란 시간의 흐름이 가져오는 필연일지도 모른다.
- 사랑스러운 원숭이의 일기 中



지진과 쓰나미의 영향으로 노심이 융해된 후쿠시마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쏟아져 나왔다. 눈에도 보이지 않고,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왔다. 막연하고 어렴풋한 불안을 끌어안은 채로, 뭐 괜찮겠지, 하고 암시를 걸며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경계란 항상 모호해요. 각자 자기만의 현실 인식에 따라 믿는 것을 스스로 정의해갈 수밖에 없죠.”
- 트랜스시버 中



“전자서적 시대에도 소설 퇴고는 종이로 하는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편이 머리에 잘 들어오거든. 텍스트 데이터로만 된 소설이라니 육체가 없는 인간하고 비슷하지 않아? 그건 작가의 영혼에서 나온 유전 정보일 뿐이야. 인간에게 육체가 필요한 것처럼, 종이책도 사라질 일은 없지 않을까? 재고 관리나 서점 책꽂이가 부족하다는 문제는 남겠지만.”



자택에 제본용 3D 프린터와 책의 재료를 보관해두고 읽고 싶은 책의 데이터를 다운로드한다. 전자책처럼 텍스트만 담긴 데이터가 아니라 장정이나 재질 등 단행본을 구성하는 모든 정보가 담긴 데이터다. 그것을 3D 프린터로 출력한다. 펄프 입자나 그와 비슷한 재료를 차곡차곡 겹쳐 활자가 인쇄된 종이로 묶은 책을 집 안에서 손쉽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 방법이라면 공장 생산으로는 실현할 수 없었던 복잡한 장정도 가능해진다. 전자서적과는 달리 묵직한 책으로 수중에 남을 것이다.

-어느 인쇄물의 행방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