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죽음을 이기는 독서 -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고 싶은 인생의 책들

uragawa 2018. 10. 27. 21:42

“나중에”라는 개념이 갑자기 비현실적이라기보다는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불이 언제 꺼질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다면, 불이 꺼질 때까지 책을 읽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당신이 책에 관해서 가장 먼저 의식하게 되는 것은 책이 가진 힘이고, 책의 힘이란 결국 생각하게 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내가 아직 시드니 대학교에 다니던 1950년대 후반에는 스노의 소설을 알고 있어야 교양인 대접을 받았다. 당시 나는 스노의 소설들을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충격적일 정도로 지루했다. 오죽하면 지금도 스노의 소설은 다시 도전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는 최근 큰딸에게 주려고 퍼모의 대표작 『선물의 시간(A TIme of Gifts)』을 헌책방에서 샀다. 큰딸이 다 읽고 나면 책을 빌려 달라고 해서 다시 한 번 읽어 볼까 생각 중이다. 퍼모가 다뉴브 강의 바하우 계곡을 처음 걸었던 때를 떠올리며 쓴 대목들은 한 편의 시 같다.



내가 소장하고 있던 셰익스피어 전집은 오래전에 셀프리지 출판사에서 나온 한 권짜리 책으로, 각주가 전혀 없는 대신 핸리 어빙경(Sir Henry Irving)이 직접 쓴 서문이 실려 있다. 나는 늘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늘 셰익스피어를 읽는 것이나 다름 없었고 그 바람에 책이 너무 너덜너덜해져서 결국 고무줄로 묶어야 했다.



책에 미친다는 건 사랑의 행위고 사랑의 행위는 합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머니까.



코퍼스 크리스티 대학읜 선임 연구원인 그는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이미 철학과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집으로 책을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진 상황이라 책을 집 안으로 몰래 가져가 숨겨 놓아야 한다고 내게 말했다. 나도 그와 똑같은 책 반입 금지령에 묶여 있던 터라 물어보나 마나 우리는 커피숍에 앉아 책을 집 안으로 몰래 반입하기 위한 계획과 비법을 주고받았다.



여기서 핵심은 가장 최근에 그가 쓴 비평적 사고를 읽기 위해서 내가 다리를 절며 추운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인터넷 서점에 전화를 걸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저 인터넷에 그의 이름을 치기만 하면 끝이다.
이것이 우리 곁에 오고 있는 다음 세상이다.



나는 저자가 직접 읽어 주는 경우를 제외하면 오디오북을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오디오북을 배우들이 읽어 준다. 대체로 나는 배우들이 책을 읽어 주는 방식을 혐오한다. 그들은 글로 쓰인 것을 대화로 바꾸는 것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인 양 구두점을 무시하고 계속 읽어 나간다.



무엇이든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우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혼자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정신이 어떻게 된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