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의식의 강

uragawa 2018. 5. 10. 13:18

다윈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훌륭한 관찰자가 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활동적인 이론가가 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고정되거나 미리 정해져 있지 않으며, 변화와 새로운 경험에 늘 민감하다.



마치 시간이 압축되거나 확장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시간의 재배열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한 윌리엄 제임스의 추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시간 판단과 인식 속도는 ‘주어진 단위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사건들을 인식할 수 있느냐’, 즉 시간분할 능력에 달려 있다”



프로이트처럼 책을 많이 쓴 인물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이상하고 흥미로운 점이 하나 있다. 책을 그렇게 많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시사적이고 선경지명이 있는 아이디어는 정작 사적인 서신이나 일기장에만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모두는 경험을 어느 정도 이전하며, 때때로 어떤 경험이 남에게 들은 건지 어디서 읽은 건지, 심지어 꿈에서 본 건지 또는 실제로 일어난 건지 확신하지 못한다. 특히 생애 초기 기억의 경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표절과 잠재기억의 정의에는 겹치는 부분이 상당히 많지만 핵심적인 차이는 이렇다. “표절은 흔히 의식적이고 고의적이라고 인정되어 비난을 받지만, 잠재기억은 무의식적이고 우발적이므로 반드시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잠재기억에 대한 인식은 개선될 필요가 있다. 혹자는 잠재기억을 ‘무의식적 표절’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표절이란 단어 그 자체에 도덕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고 범죄와 사기를 암시하므로, 설사 무의식적이라 하더라도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든지 타인이나 주변의 문화로부터 아이디어를 차용한다. 아이디어는 늘 공중에 떠돌아다니며, 우리는 종종 의식하지 않고 오늘날 유행하는 구절과 언어들을 차용한다. 우리는 언어를 발견하고 그것을 빌려 와, 각자 개별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해석한다. 우리는 언어를 차용하는 것이지, 발명하는 게 아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것은 ‘왜 남의 것을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끼거나 영향받는가’가 아니라, ‘차용하거나 모방하거나 베낀 것을 갖고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다. 다시 말해서, ‘남의 것을 완전히 소화시켜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자기 자신의 경험·생각·느낌·입장과 혼합하여 얼마나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아이디어도 생명과 마찬가지로 태어나서 번성하다가, 모든 방향으로 진출하거나 아니면 중도 하차하여 멸종하는 등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전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