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복수의 심리학

uragawa 2018. 4. 26. 20:46

복수 판타지는 실제 복수의 차선次善이다. 적을 실제로 해치거나 죽일 수 없다면, 머릿속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기도 한다.



전형적으로 악질적 나르시시스트는 허영심에 사로잡혀서 남들을 상대적으로 하잘것 없는 존재로 여기고, 본인의 이익을 위해 이용할 대상으로 취급한다. 과도한 자만심과 거드름을 보이고, 막강한 권력과 방해 없는 성공에 대한 환상이 있고, 욱하는 성향이 강하다. 사무실, 공장, 학교의 지질한 폭군, 강박적으로 복수심에 불타는 애인 등 악질적 나르시시스트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만날 수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악의를 붙임성과 상냥함 뒤에 숨긴다. 이런 사람들은 직장에서는 자신감과 외골수 기질과 목적의식을 풍기며 일견 통솔력을 가진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이면은 사람을 조종하고 이용하는 무자비함과 영악함으로 가득하다. 이런 상사 밑에서 일하는 건 지옥이다.



소설은 복수가 인간의 상상력에 행사하는 원초적 지배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고통과 불행과 악의 이야기라면 사족을 못 쓴다. 영웅적 주인공은 독자의 상상 속 자기 자신이 된다. 부정행위자를 처절하게 응징할 때 우리는 전율을 느낀다. 그 뿐 아니다. 잘 빚어진 이야기일 때에 한해서지만, 우리는 다양한 입장에 감정이입한다. 스스로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중립적 방관자가 되기도 한다.
복수는 수세기 동안 로맨스 소설과 범죄 소설의 주재료였다.



20세기 최고의 아동 소설가이자 복수 이야기의 대가 로알드 달Roald Dahl은 모두 알다시피 어른들에게 학대받는 아이들의 편이다. 법도 제도도 신뢰할 수 없다. 이것이 블랙유머와 마법적 거원으로 가득한 그의 동화들에서 되풀이 되는 주제다.



사법 정의와 복수는 밀접한 동반 관계를 가진다. 가끔은 둘을 분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사법 정의라는 문명화의 얼굴 아래에는 복수가 끓고 있고, 자칫하면 언제든 야만의 뿌리를 드러낼 수 있다.



유엔 인구기금에 따르면 매년 약 5,000명의 명예살인 희생자가 발생한다. 명예살인 관행의 전제는 이렇다. 여성이 집단이나 가문의 명예를 높일 일은 없어도, ‘비이성적’ 또는 ‘부도덕한’ 행실로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킬 수는 있다. 그리고 가문의 수치는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명예살인의 전형적 형태는 간통했거나 순결이나 정조를 잃은 여성을 살해하는 것이다. 전직 유엔 인권 고등판무관 나비 필레이Navi Pillay는 단도 직입적으로 말한다. “집안의 ‘명예’를 지킨다는 미명 아래 여자와 소녀를 총으로 쏴 죽이고, 돌로 쳐 죽이고, 불태워 죽이고, 생매장하고, 목 졸라 죽이고, 질식시켜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는 일이 몸서리쳐지는 빈도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원한grudge’은 과거의 모욕이나 피해에서 기인한 악의나 적개심이 집요하게 지속되는 감정 상태다.



여자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강간당해도 할 말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요리와 육아를 하지 않는 여자의 경우 … 남자에 따라서는 그런 여자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영원히 잊지 못할 사건이 하나 있다. 한 남자가 자기 아내를 프라이팬으로 죽인 사건이다. 음식에 간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살해 이유였다.



인터넷 시대에 들어 보복성 스토커의 행동 범위는 경계를 알 수 없게 팽창했다. 지금은 사이버 스토킹이 현실 세계의 물리적 스토킹을 앞지를 태세다. 사이버 스토커는 피해자를 거의 동시에 다수의 경로로 추적하고 공격할 수 있다. 웹사이트, 이메일, 블로그, 소셜미디어, 스파이웨어 등이 그 경로가 된다.



웹 포르노의 수요는 끝도 없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체 인터넷 다운로드의 35%가 음란물이고, 미국에서는 4000만 명이 규칙적으로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한다. 영국에는 성적 흥분을 위해 포르노그래피에 의존하는 사람이 130만 명이라는 조사 보고도 있다. 이들에게는 사이버 섹스가 실제 섹스 파트너를 대체한 셈이다.
포르노 접속자에게 사이버 공간의 익명성은 공격 불능성과 탈개인화를 제공하는 보호막으로 작용한다. 이들은 무정형의 사이버 공동체에 몸을 담그고, 현실의 제재와 도덕적 제약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즐긴다.



강간은 대개의 군법과 교전 수칙에서 불법이다. 하지만 전쟁만 났다 하면 여성 혐오성 폭력이라는 괴물이 뛰쳐나온다. 적국의 여성은 이중으로 공격 대상이 된다. 그들은 적이다. 따라서 더럽혀져도 ‘싸다’ 거기다 그들은 여성이다. ‘악하고’ ‘순하고’는 이유로, 또는 ‘하찮고’ ‘물러터졌기’ 때문에 착취되고 소모된다. 1937년 청일 전쟁 중 일본군이 중국 난징을 점령했을 때, 극악무도한 대학살과 와중에 도시 전역에서 온갖 연령대의 여성들이 잔인하게 강간당하고 신체를 훼손당했다. 일본군 군사 수칙은 명목상으로는 이런 행위를 금하고 있었지만, 범법자들은 증거를 인멸하여 쉽게 규제를 피했다. “우리는 여자들을 교대로 강간했습니다.” 당시 일본인 가해자가 자백했다. “그 후에는 항상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시체는 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다른 가해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강간할 때는 여자를 여자로 봤고, 죽일 때는 돼지나 다름없는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나징 대학살은 전시에 민간인을 대상으로 자행된 대량 학살 중에서도 최악의 야만적 범죄로 꼽힌다. 일본의 야만적 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은 군에 대한 성적 보상책을 만들면서, 보상 방법을 공이 있는 부대에게 ‘전문 직업 인력’이 성性을 제공하는 ‘종군위안소’ 운영으로 국한했다. 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일본군 ‘위안소’ 설치는 오늘날까지 세계가 경악하는 정신적 상처를 낳았다. 당시 ‘위안부’는 속임수에 넘어갔거나 강제로 납치당해 성노예가 된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강간과 구타와 병으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고, 대다수는 목숨을 잃었다.
나치 독일에서는 유대인 소녀들이 독일 군인들에게 빈번하게 강간당하고 매춘을 강요당했다.



상대적으로 사소한 악행에 대한 소심한 복수는 때로 ‘기분 좋은’ 분풀이가 된다. 직위 차이 때문에 보다 직접적인 방법을 찾기 어려울 때는 특히 그렇다.



이 감정은 먼 옛날부터 인간 사회에 정서적 유전자대로 대를 이어 전해졌다. 이제는 복수심을 가지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복수의 실행 여부와 방법은 전혀 다른 문제다.



상대방을 무시해보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은 바로 나다. 그런데 소중한 나의 머릿속을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차지하고 있다. 내 기억의 주인인 나를 위해서는 나에 대한 좋은 기억을 더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상대를 무시해야 한다. “복수하면 적과 같은 수준이 된다. 하지만 무시하면 적보다 우월해진다”는 베이컨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