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생겼나? 그러면서도 아이는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지랖 넓게 남의 일에 끼어 구경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그녀를 아웃사이더, 외골수, 책벌레라고 부르며 싫어하기도 했다. 아이 자신은 그런 걸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누구나 자신의 길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에 자기 자신을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어우후이 사장은 자기 돈도 아니지만 보험사가 거액의 보상금을 내는 것이 싫었다. 회사의 ‘신용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보험금 지급이 결정되면 회사가 아니라 보험사가 돈을 내준다. 대신 보상을 받은 회사의 신용액이 줄어들고, 보험사는 그 회사에 더 높은 보험료를 청구한다. 저우치전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회사에서 직원을 위해 최대한의 보험금을 받아줄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했다. 회사와 보험사가 한통속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홍콩의 영광은 이런 서민 계층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대기업은 작은 기업을 착취하고, 작은 기업은 근로자를 착취한다. 사장에게 상업적 이익은 근로자 가정의 앞날보다 중요하다.
요즘 홍콩은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이 뒤집혀버렸다. 힘으로 정당한 논리를 찍어누르고, 흰색이 검은색으로 둔갑한다. 결백하다고 해도 그 사실이 쉽게 밝혀질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없다.
세상에는 업보라는 게 없어. 돈은 그냥 돈이야. Money is money! 주식시장과 똑같아. 네가 주가가 높을 때 주식을 팔아서 돈을 벌면, 네 주식을 산 다른 투자자들은 주당 가격이 내려갈 테니 손해를 보게 된다고. 그건 더러운 돈을 번 게 아닐까?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더니 정치인의 얼굴은 변검보다도 변화가 빠르다. 샤오더핑은 세상의 무정함을 충분히 체험했지만 끓어오르는 울분은 어디에도 쏟아낼 데가 없었다. 그저 속으로만 삼킬 뿐이다.
“어우야이 씨, 인간은 이상한 동물입니다. 경계심이 없어지면 낯선 사람에게 가족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죠.”
스중난은 인과응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오랫동안 비도덕적인 술수로 살아온 인간들이 온갖 방법으로 어부지리를 얻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순수한 사람은 억울하게 당하기 일쑤다. 드러내놓고 말은 할 수 없지만, 스중난은 연약한 놈들을 경멸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려면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
나쁜 놈은 승승장구 하고 착한 놈은 끝이 좋지 않다. 그게 세상의 법칙이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선량함’이란 한 사람의 성취를 가늠하는 지표가 아니다. 사리사욕을 채울 수 있다면 스중난은 남이 죽든 말든 관심이 없다. 자신과 무관한 사람의 생사라면 더욱.
“요즘 청소년들은 SNS를 쓰지 않는 아이들이 없죠. 페이스북, 트위터, 웨이보, 인스타그램 등등. 수많은 사람들이 근황, 사진, 영상 등을 올리고, 친구관계를 공개로 설정해놓습니다. ‘좋아요’를 몇 개 더 받으려고 사생활도 쉽게 노출합니다…… 해킹 기술을 쓸 필요도 없이 학생 한 명 한 명의 성격, 친구, 습관, 심지어 개인적인 기호도 알아낼 수 있죠.”
“세상에서 제일 파훼하기 쉬운 성벽이 바로 인류죠. 컴퓨터 시스템이 발전하고 완벽해져도 인간 본성의 취약점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겁니다.”
아이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인간성을 사물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말에 불쾌감을 느꼈지만, 그 말이 현실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약육강식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이용하는 사람’과 ‘이용당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인간성의 약점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자신은 한 번도 이런 각도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도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사회에 도움되는 사람이 되어라’라는 말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였고, 그것이 이상적인 인생이라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어머니와 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으면서 사회에 도움 되는 사람이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든다.
갈수록 책 읽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었다. 젊은 사람은 SNS에서 떠들거나 내용도 없는 글을 읽을지언정 책을 펼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실상 현대인이 날마다 인터넷에서 읽는 문자량은 놀라울 정도다. 미국 어느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하루 평균 5만 자 이상의 인터넷 정보를 읽는다는데, 그것은 거의 소설 한 권 분량이다.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자기가 정의롭다고 여기고 세상을 위해 좋은 일 한다고 나대는 사람이 사실은 편집광에 도덕적인 체하는 편견 대마왕일 수 있대요. 그런 사람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죄악’으로 보고 없애버리려고 한대요.
인류가 다른 생물보다 고등한 것은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자신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음을 압니다. 우리는 논리적인 추론 능력이 있고,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것과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인터넷은 ‘문자’가 주요한 소통 수단입니다. 그 방식에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그 저자신호 뒤에 있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의심하지 않게 되죠. 즉 글자 뒤의 사람이 정말로 자기가 생각하는 그 사람인지는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 인터넷 사기가 많이 늘어나게 된 거고요.”
“인간은 두 가지 상황에서만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아녜가 진지하고 엄숙하게 말했다.
“첫째는 흔한 경우죠. 너무 큰 고통을 겪을 때입니다. 암 말기처럼 육체적인 고통도 그렇고, 우울증처럼 정신적인 고통도 그렇죠. 자살하는 목적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입니다. 혹은 주변 사람에게 죄책감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도 있겠죠. 엄격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비이성적인 수단입니다.”
“세상에 이성적인 자살도 있나요?”
“있죠.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어떤 목적을 이루고 싶어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객관적으로는 이성적이라고 할 수 없지만, 자살자 입장에서는 아주 합리적인 결정입니다. 이게 두 번째 자살하는 이유입니다.”
“인간은 자기가 이기적인 동물이란 것을 인정하기 싫어합니다. 우리는 도덕을 이야기하면서 겉으로 아주 약간의 악의도 용납하지 못하지만, 여유를 잃으면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면서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죠. 그게 인간이라는 거예요. 게다가 인간은 핑계를 잘 대거든요.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인정할 용기도 없으면서 자기 최면을 걸어 편안해지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위선이죠. 간단하게 묻겠습니다. 당신은 왜 복수하려는 겁니까?”
생계에 치여 아이는 더 중요한 일을 소홀히 했다. 삶에서 돈은 수단일 뿐, 목적은 가족과의 행복한 삶에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쉽게 본질을 잊어 버린다. 돈을 목적으로 살고 돈의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어쩌면 고독이 습관화 된 사람에게도 타인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는지도 모른다.
“성범죄자가 정상인과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범죄자들은 아무 특징도 없습니다. 그놈들은 정상적인 직업과 가정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만나는 건 그들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죠. 그 일부분을 그 사람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그의 함정에 빠지는 겁니다.”
그가 평생 제일 치 떨려한 것이 바로 ‘정의’다. 세상에는 입장 차이로 벌어지는 분쟁이 많다. 각종 분쟁과 대항 중에 어느 한 쪽이 정의라는 기치를 높이며 비겁한 수단을 쓰고, 또 이를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미사여구로 포장한다. 그러나 결국은 힘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것일 뿐이다. 이긴 자가 왕이 된다는 정글의 법칙과 다름이 없다. 아녜는 그런 정글의 법칙을 아주 깊게 체험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일 뿐이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의 결과를 당당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걸핏하면 어쩔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대죠. 이 사회가 점점 부패하는 건 그런 ‘평범한 악’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서 선악이나 진위보다 이해관계를 따지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그런 사람을 도와 주는 건 선량한 이들이 괴롭힘 당하도록 옆에서 돕는 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