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토니와 수잔

uragawa 2017. 5. 22. 21:24

어떤 문제도 끝나기 전까지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다. 모든 문제는 영구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토니 헤이스팅스는 그의 희망이 머물러 있던 동굴이 차갑고, 텅 비어 있고, 미래를 빼앗겨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이 남자들이 더 이상은 거기에 없는 뭔가를 찾는 걸 돕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부질없이 되돌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텅 빈 도로들, 텅 빈 숲들, 텅 빈 차들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보는 척해서 내가 그곳들을 다 찾아봤고,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생각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다니는 것 자체가 그들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계속 시간의 흐름을 따르길 거부하는 ‘안 돼! 안 돼!’라는 말만 들리고 있었다. 미래는 끝났다. 순간순간이 조각조각 떨어지고 분리되면서 시간은 그를 놔두고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는 문명사회가 붕괴돼서 자신이 그 잔해 더미 속에 떨어질봐 크게 두려워했다. 핵전쟁이나 무정부 상태나 테러리즘 같은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수세기에 걸쳐 인류가 힘들게 쌓아올린 문명이 파괴되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그가 저녁에 읽는 여러 책에서 다른 재앙들이 계속 나왔다. 이산화탄소가 모든 곳을 열대 지방과 사막으로 만들고, 작열하는 태양이 사라지는 오존층을 통해 인간을 사정없이 달구는 재앙. 그리고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해서 차들 사이에 몸이 끼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재앙도 항상 존재했다.



한 번은 그녀가 에드워드에게 왜 글을 쓰고 싶은지 물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가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 이유. 에드워드의 대답은 매일 달랐다. 글은 음식과 음료야. 에드워드가 말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모든 게 죽기 문이야. 죽는 것들을 구하기 위해서지. 글을 쓰는 이유는 세상이 불분명한 혼란 덩어리이기 때문이야. 그 혼란 덩어리는 단어를 써서 지도로 그리기 전까지는 제대로 볼 수 없지. 우리의 눈은 침침하니 잘 보이지 않지만 글을 쓰면 안경을 쓰고 보는 것과 같아. 아니, 글을 쓰는 이유는 읽고 내 삶에 있는 이야기들을 나에게 맞춰 쓸 수 있도록 다시 만들기 위해서야. 글을 쓰는 이유는 내 마음이 횡설수설 떠들어대기 때문이야. 그 혼란 속에 글이란 길을 파서 길을 찾는 거지. 아니,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내 머릿속에서 두꺼운 껍질을 덮어쓰고 나오지 않기 때문이야. 글이란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 있는 탐침이야. 그리고 반응을 기다리는 거지. 내가 왜 글을 쓰는지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에게 내가 쓴 걸 보여주는 거야. 그런데 난 아직 준비가 안 됐어. 그가 말했다.



그녀의 마음에 걸리는 건 사실 다른 것이다. 독서란 바다의 물살을 헤치며 나아가는 수영 선수와 같다. 낮에 수잔의 마음은 육상에서 공기를 마시는 동물인데 독서를 할 때는 그 동물이 바닷물 속에 가라앉아 돌고래, 잠수함, 물고기로 바뀐다.



“세상은 죽어가고 있어. 질병들은 점점 더 치명적으로 발전하고 있고, 죽음의 경련이 이미 시작됐어.”
그녀가 말했다. “누구든 내일 교통사고로 죽을 수 있어요.”
그가 공격했다. “네가 죽은 후에도 다른 사람들이 계속 살아갈 거란 전통적인 지식은, 인류가 죽어가고 다른 사람들의 살아갈 이유인 모든 것들이 사라질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것과는 달라.”



글쓰기의 본질적으로 부정직한 면은 기억도 더럽힌다. 수잔은 자신의 기억들을 이야기로 쓴다. 하지만 이야기는 기억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스쳐지나가는 순간들을 보관할 작은 방들을 시간을 두고 쌓아올린 것이다. 이야기는 기억을 텍스트로 바꾸면서 깊이 파고 들어가고, 찾아보고 싶은 정서적 욕구를 해소시킨다.



일이 틀어졌다. 음식이 상하고, 우유가 맛이 가고, 고기가 썩은 것처럼 그렇게 변질돼버렸다. 캠프의 희한 불빛 속에서 사고가 일어나고 뭔가 파괴된 분위기가 흘렀다.



그가 아직 미성숙한 인간이라서 그런 쾌감을 음미할 수 없는게 아니라 성숙이라는 자연스런 과정을 거쳐서 그런 쾌감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가 느낄 수도 있었던 살인의 재미는 문명이이 되는 과정 속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하면서 떨쳐냈지만 레이는 그런 과정 자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야만인인 것이다. 토니는 그런 무식한 레이에 대한 격렬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경멸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뭔가 무시무시한 현실이 마음속에 숨어 있는 걸 의식하면서도, 그녀는 계속 그것과 마주하는 순간을 연기하고 더 오래 책 속의 세계에 머물렀다. 



그녀는 침묵을 지키는 자신의 입술로 낯선 단어 하나를 말해본다. 증오라는 말. 이 말을 하면 극단적으로 혁명적인 삶을 살게 될까봐 두려워서 쓰지 못했다. 그녀가 그 말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강한가?







2017/01/26 - [먼지쌓인필름] - 녹터널 애니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