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왕과 서커스

uragawa 2017. 1. 7. 21:17

취재 기본은 4W1H다. 언제, 어데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는 처음 단계에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예단予断이 되기 때문이다.



술렁거리는 소리가 무거운 안개처럼 주위에 자욱했지만, 그것은 분노나 비애와 같은 명확한 방향성은 없고 그저 각각의 속삭임이 한데 어우러진 소리 같았다.



신문사에서 나온 뒤로 프리랜서로 먹고살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정 수입이 없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불안한 일이다. 회사에서 일하면 비록 내키지 않는 일을 한 달에도, 이렇다 할 실적 없이 통상 업무만 하면서 보낸 달에도 통장에 월급이 들어왔다. 그 무렵이 좋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는 매달 내야 하는 월세가 발밑을 조금씩 좀먹어가는 오싹한 기분은 느끼지 않았다.



용기를 내기 위한 의식儀式이 필요했다. 지금까지는 그런 건 필요하지 않았다. 취재중에 위험을 느끼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장이나 열띤 취재 경쟁 속에서 취재 대상이 격앙하는 경우는 일상다반사였지만, 그것을 무섭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노성의 대상은 나라는 개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는 혼자다. 이 계단을 내려가려면 뭔가가 필요했다.



“진실만큼 어이없이 왜곡되는 것도 없지. 그보다 다면적인 것도 없어.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당신이 전하는 이야기는 그대로 일본인이 네팔에 품는 인상이 돼. 여기서 내가 국왕이 자살했다고 말하면 당신네 나라 사람들은 그 말을 믿어 의심치 않겠지. 나중에 진실이 유포된다 해도 그걸 읽고 첫인상을 바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분명 신념을 가진 자는 아름다워. 믿는 길에 몸을 던지는 이의 삶은 처연하지. 하지만 도둑에게는 도둑의 신념이, 사기꾼에게는 사기꾼의 신념이 있다. 신념을 갖는 것과 그것이 옳고 그름은 별개야.”



“자기가 처할 일 없는 참극은 더없이 자극적인 오락이야.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지. 끔찍한 영상을 보거나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말하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그런 오락인 거야.”



취재는 거절당했다. 그런 서릿발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는 어째서 취재를 거절하는지 설명해주었고, 내 사고방식의 어느 부분이 안일한지 지적해주었다. 이것은 어지간한 친절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생각의 차이가 있을 때, 아무런 대가 없이 야단쳐주는 것은 가족 아니면 기껏해야 학교 선생님 정도다. 그 외의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냥 화를 내거나, 아무 말 없이 앞으로 상종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 그는 내가 친절했던 것이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위대한 일을 해내려면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나는 계획. 또 하나는 촉박한 시간.



무엇을 쓸지 결정하는 작업은 무엇을 쓰지 않을지 결정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카투만두는 어둠에 덮여 있었다. 좁은 골목 위로 펼쳐진 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보였다. 고요했다. 인구 칠십만의 도시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잠깐 걸을래?”
그렇게 묻자 사가르는 놀라지도 않고 머리 뒤로 깍지를 꼈다.
“걸어다니면 뭐 좋은 일이라도 있어?”



몇 명, 몇백 명이 제각각의 시점으로 전하는 글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아간다. 완성에 다가간다는 것은, 내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인식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