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삼면기사, 피로 얼룩진

uragawa 2016. 3. 10. 23:31

이 사람은 언제까지 신혼 기분으로 있을 셈인가. 결혼한지 7년이나 지났는데 남편이 바람피우는 게 아닐까 내내 걱정하며 가슴을 졸인다. 막 연애를 시작한 아가씨도 아니고 좀 더 당당해도 될 텐데. 진짜 바람을 피운다 한들 모르는 척 있으면 대충 접고 돌아올 것이고 그만두지 않으면 전처럼 또 친정으로 가버리면 될 것 아닌가. 그럼 헐레벌떡 데리러 오는 게 형부라는 사람이니까. 중매로 결혼한 언니가 이제 와서 새삼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아내라는 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게 아니라 마사후미라는 남자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게 두려운 걸까.

-사랑의 보금자리 




바로 그때 문득 나는 지금껏 내 사랑이 왜 성사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키 큰 사람이 좋다든가, 잘생긴 얼굴이 좋다든가, 늘 외모에만 반해서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교제한 사람들은 적어도 다구치 히로시보다 훨씬 멋있었다. 교체 초기에는 그런 멋진 남자가 나와 사귀어 주다니 꿈만 같았다. 하지만 3개월이나 반년쯤 지나면 점차 어긋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건 그렇게 멋진 남자와 내가 잘 될리 없다는 콤플렉스에서 비롯됐을지 모른다.




일이 있긴 하지만 아르바이트이고 수입이 있긴 하지만 에이코를 도쿄로 불러 살림을 차릴 정도는 아니다. 마흔 되기 전에 취업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여러번 머리를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취직자리를 찾고, 면접을 보고, 채용이 결정되기까지 거쳐야 할 과정이 쉬울 리가 없다. 대학 졸업생도 취직하기 어려운 세상에. 분명 수십 차례 회사 문을 두드려야겠지. 거기까지 생각하면 다카유키의 머릿 속은 멍해졌다. 수십, 수백 명에 달하는 낯선 사람과 만나 왜 그 나이에 아르바이트 같은 걸 했냐는 질문을 받고, 또 전 회사는 왜 그만뒀냐고 추궁당할 생각을 하면 취업 정보지를 살 엄두도 나지 않았다. 

-밤 불꽃놀이




집은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쾌적하고 모두가 편안히 쉴 수 있는 장소일 것이다. 그렇게 A라는 장소를 찾아 전속력으로 달렸는데 마침내 도착하고 보니 전혀 낯선, A도 B도 C도 아닌 이상한 장소였다. 움막 같은 어딘가.




아이코는 그때 그 일을 후회했다. 그는 나와 연애를 했을 뿐인데 갑자기 아버지 역할까지 떠맡기려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관계를 만드는 데에는 순서가 있다. 그 순서대로 했어야만 했다.




아이코가 탐독하는 만화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수업을 빼먹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쭈뼛대며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고, 자전거를 끌고 강변을 걷고, 휴일이면 해변에서 별을 보고, 길 한복판에서 큰소리로 싸우다가 빗속에서 힘껏 껴안으며 화해하고, 교실 커튼 뒤에 숨어 키스를 나눈다. 아이코는 어렸을 때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가슴 뛰고 숨 막히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픈 그런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저 너머의 성




앞으로도 고민을 나눌 여자 친구가 생긴다거나 다정하게 말할 수 있는 남자와 알게 되는 일은, 자신의 인생에선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자신이 마음을 열지 않기 떄문이 아니라 나오가 먼저 그것을 손에 넣었기 떄문이다.

-빨간 필통




가로등 불빛만 비치는 주택가를 빠져나와 길가로 나오자 조금 더 밝아진다. 비디오 대여점과 가전 판매점의 네온사인, 달려가는 자동차 불빛. 테루오는 빛의 강 같다는 생각을 한다. 다쓰코와 둘이 이 빛의 강을 힘겹게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다고.




늘 내일, 내일이다. 테루오는 머리 위 오렌지 빛 알전구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온통 내일, 내일로 미루는데 그 내일은 아무래도 오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할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동적으로 유카코가 떠올랐고 예전에 자신이 믿었던 운명이 시효를 다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필시 자신에게는 운명도 유통기한을 넘겼고 새로운 만남도 없을 것이다. 야근 거부에 잦은 실수로 일에서도 승진이나 출세, 희망 부서로의 이동 따위와는 멀어질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머니를 위해 사는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일어서려는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도 모른 채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쭈구리고 앉아 등을 동그랗게 구부린 채 소리 없이 운다. 콧물인지 눈물인지 물방울이 떨어져 아스팔트에 검은 자국을 남긴다. 개미가 그것을 피해 간다. 

-빛의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