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눈먼 올빼미

uragawa 2015. 8. 24. 22:39

“문제의 핵심은 내가 이 모든 것에 지쳤다는 거야. 나는 범죄자로 선고받은 자보다 훨씬 나쁜 상황에서 밤을 보내고 있네. 나는 삶에 지쳤어. 나는 더 이상 나를 속일 수 없어.”



나의 유일한 두려움은 나 자신도 알지도 못한 채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삶의 여정에서 나는 나와 타인들 사이에 가로놓인 두려운 심연을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침묵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가능한 한 오래 나의 속마음을 남에게 발설하지 않는 것임을. 이제 만일 내가 글을 쓰겠다고 결심했다면, 그것은 단지 내 그림자에게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일 뿐이다.



내 마음 상태는 영원한 깊은 잠에 빠진 사람의 마음과 같았다. 이런 꿈을 꾸려면 더없이 깊은 잠에 빠져야만 한다. 내게는 침묵이 영원한 삶의 힘이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이라는 평원에 언어 같은 장애물을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세상이 세상이었던 이후로, 내 삶이 시작된 이래로 줄곧 하나의 시신이 어두운 방 안에서 나와 함께 있어 왔다고. 차갑고 생기 없고 움직임도 없는 시신 하나가.



지금까지 나는 너무도 많은 모순된 일들을 보았고, 너무도 많은 종류의 말들을 들었다. 내 눈은 다양한 사물의 너무도 많은 닳아빠진 표면을 보았다. 그 얇고 거친 껍질 뒤에 영혼이 숨어 있는. 그렇기 때문에 이제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바로 이 순간, 손에 만져지는 단단한 것들의 존재조차도 나는 의심하다. 분명하고 명확한 진실들도 나는 의심한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성행위를 하고, 똑같은 유치한 걱정으로 자신을 괴롭혀 왔다. 삶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터무니 없는 이야기, 말도 안되는 멍청한 긴 사연이 아닐까?



냄새는 그 시기의 행동과 말을 불러낼 뿐 아니라, 한순간 그 시절이 되돌아온 느낌을 주었다. 그 일들이 바로 그날 일어난 것만 같았다. 나는 기분 좋은 현기증 같은 것을 경험했다. 한없이 먼 세상에서 내가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았다.



나는 늙은 사이프러스 나무 아래, 고운 모래 위에 길게 누웠다. 물 흐르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물소리가 뚝뚝 끊겨서 꿈꾸는 사람이 중얼거리는 알아듣기 힘든 음절들 같았다.



내가 걸음을 멈출 때마다, 달빛 아래 내 그림자가 벽에 길고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런데 그 그림자에 머리가 없었다. 벽에 머리 없는 그림자를 드리우는 사람은 그 해가 가기 전에 죽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죽음의 면전에서 종교, 신앙, 믿음은 아무 힘도 없고 유치한 것임을 통감했다. 아무리 좋게 봐도 그것들은 건강하고 성공한 자들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었다. 죽음과 나 자신의 절박한 상황이라는 두려운 현실 앞에서, 심판의 날과 내세의 상벌에 대해 주입받은 개념들은 모두 재미없는 사기 같았다. 그리고 내가 배운 기도문들도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완전히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어둠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의 잃었던 생각들, 잊었던 두려움들, 머릿속 미지의 구석에 감추어져 있던 무섭고 믿기 힘든 상념들이 다시 소생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를 향해 얼굴을 찌푸리는 것은 바로 어둠 속에서였다. 내 방 구석들에, 커튼들 뒤에, 문 옆에 사람을 위협하는 형상 없는 형체들이 있었다.



삶은 지속되는 과정에서, 인간 각자가 쓰고 있는 가면 뒤에 있는 것을 냉장하고 공정하게 드러낸다. 누구나 몇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하나의 얼굴만 쓰고, 그러면 자연히 더러워지고 주름이 생긴다. 이런 이들은 절약하는 부류이다. 다른 사람들은 자손들에게 물려주려는 소망에서 자신의 가면들을 보살핀다. 또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얼굴을 바꾼다. 하지만 그들 모두 늙음에 이르면, 어느 날인가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이 마지막 가면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곧 그것이 너덜너덜해지고, 그러면 그 마지막 가면 뒤에서 진짜 얼굴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