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남은 날은 전부 휴가

uragawa 2015. 8. 10. 20:30

“일의 가치랑 보수는 딱히 일치하지 않으니까, 신경 안 쓰는게 나아.”

“그런가요?”

“잘 버는 놈들일수록 제대로 된 일 안 해. 거만한 자세로 컴퓨터 앞에 앉아 뽁뽁거리며 버튼이나 누르고 사람을 아랫사람 부리듯이 부려먹고. 그보다는 짐 나르고 물건 만드는 사람들이 훨씬 훌륭한데 말이지.”



“되돌릴 생각이세요?”

“가능하다면.”

“그런 건 생각하지 않는 게 나아요.” 나는 스스로 의식하기도 전에 말하고 있었다. “과거만 돌아보고 있어봐야 의미 없어요. 차만 해도, 계속 백미러만 보고 있으면 위험하잖아요. 사고가 난다고요. 진행 방향을 똑바로 보고 운전해야지 지나온 길은 이따금 확인해보는 정도가 딱 좋아요.”



“참 묘한 하루네.”

나는 기지개를 켠 다음 손에 쥔 열쇠를 바라본다.

“추억에 남는 날이 됐네.” 어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남은 날은 전부 휴가·미조구치와 오카다 中



“오카다, 멋진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미조구치가 갑자기 진지하게 말했다.

“그걸 알면 이 고생을 하겠어요.”

“뭐든 끝까지 해낸 경험이라는 것 자체가 난 없으니까.”

“그럼 독서는 어떠세요. 전 잘 모르지만,”

“<고르고 13>이나 읽어볼까.”

“만화책이잖아요.”

“그렇지. 100권도 넘게 나와 있잖아. 전부 다 읽게 되면 그때쯤엔 뭔가,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지.”



어릴 때부터 그랬다. 곤란한 상황에 빠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 행동 했다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마!’하는 꾸지람만 들었다. 특히 어머니한테 야단을 많이 맞았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먼저 자신의 성공이나 생각하라며.

-어른의 성가신 오지랖·오카다와 곤도 中



아버지도 사라지고, 오카다 군도 사라지고, 유미코 선생님도 사라졌다.

“다 그런거야.” 어머니는 말했지만 그 ‘다 그런거’가 나는 무서웠다.

그래서 종종, 그 영화를 떠올렸다.

연인을 잃은 주인공이 마지막에 내뱉는 대사다.

“슬픔은 잊어야만 했지, 나에게는 아직 남은 시간이 있었어.”

그 말 그대로 나는 아직 열 살이었다. 슬픔은 잊어야만 했다. 남은 시간이 아주 많았으니까.

-작은 병정들의 비밀 작전·오카다와 유미코 中



미조구치 씨는 닥치는 대로 하고 보는 사람이라 답이 없다. 50대 중반으로 나보다 세 바퀴는 더 살았는데 그런 것치고는 늘 즉흥적인 생각과 충동에만 의지해 행동하는 것 같다.



상무는 말했다. “뭐, 미조구치는 동물이랑 같아서 자기밖에 생각 안 해. 제대로 된 일을 해본 적도 없이 남한테서 빼앗기만 하면서 살아왔지. 오카다도 그렇게 당한 거야.”



미조구치 씨와는 달리 나는 지금껏 인생의 대부분을 우등생으로 살아왔다. 책도 오락 소설부터 비즈니스 서적까지 가능한 한 다 읽어왔다. 어릴 때부터 되도록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존중해왔다고 생각한다. 성실하게 일하는 어른이 어리석게만 느껴졌고 그래서 부스지마 씨 밑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 세상은 서로 속고 속이거나 규칙이 필요 없는 경쟁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인이라면 자신의 언동에 주의를 기울여 발목 잡힐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그 왜, 요즘 젊은 녀석들은 여자를 꼬드길 때도 메일을 보내잖아. ‘네가 좋아!’ 같은 소리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자, 전송, 이러잖아.”

“그런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보다는 걸어서 집까지 찾아온 남자가 ‘네가 좋아!’ 하고 직접 말하는 편이 훨씬 감동적일 텐데.”

“상대에 따라 달라요. 분명.” 나는 대답한다. 요즘 시대에 남자가 느닷없이 집까지 찾아오는 것은 감동보다는 공포다.

-날아가면 8분 걸어가면 10분·미조구치 그리고 오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