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과 인연이 희박한 상대에게는 얼마든지 잔혹해진다.
이 세상에 자신의 힘만으로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인간은 태어나서 독립하기까지 가정 안에서 좀 더 큰 사회에서 살아낼 수 있는 자양분을 얻는다. 그것은 간접적으로는 부모의 사상이나 지혜고 직접적으로는 재력이나 인맥이기도 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런 환경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이나 블론디처럼 가정에서 악영향밖에는 받지 못한 인간은 인생 자체가 기나긴 핸디캡 레이스에 억지로 참가하는 꼴이 된다.
“나는 단지 복수를 하려는 것뿐이야.”
“복수를 한다고?”
그것은 테러리스트가 곧잘 입에 담는 말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만행에 대한 자기변호.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살인을 신성시하려는 수많은 개똥철학. 하지만 가타나의 입을 통해 듣고 보니 그 말은 왠지 맑고 순수한 단어처럼 들렸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신에게서 부여받은 역할이나 사명이 있어서 그것이 직업이나 살아가는 모습에 반영돼. 사람에 따라 그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맞부딪히는 일도 있는 법이지.”
5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내 인생에 그리 대단한 역할 따위, 가져본 적이 없다. 경찰 업무에 보람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건 다른 직업이었어도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단속반, 강력반, 마약반으로 다양한 부서를 전전하면서도 딱히 별다른 감개는 없었다. 그저 모두가 비슷비슷했다. 죄를 저지른 자를 잡아들이고 그 보상으로 하루하루 먹고 살아갈 비용을 벌어들이는 단순한 노동.
파괴적인 충동은 언제나 깊은 내면에서 찾아온다.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너무도 깊은 저 안 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