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감이라고 하는 말 알아?” 카렌은 혼혈답게 또렷한 쌍꺼풀이 있는 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어떤 사람과 눈이 마주치거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바로 솟구치는 감성같은 건데…….”
“왜 검은 옷을 입은 여자만 대상으로 삼은 거지?”
“그건 내 망상 때문이야. 난 어렸을 때부터 계속해서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을 지배하는 꿈을 꿔왔어. 검정은 악마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내겐 숲을 연상시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군. 그렇지만 이 세상에 진짜 검정색은 존재하지 않아. 검정색을 본 순간, 그 색은 아무리 조금이라고는 해도 빛을 반사하고 있는 셈이지. 하지만 검정에 빨간색을 칠해 넣으면 검정색은 질량이 늘어나지. 알고 있나? 염색을 하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야. 난 그걸 실현해보고 싶었어. 그 여자들의 피가 옷을 물들여 완벽한 검은색을 만드는 거지. 거기에는 사람과 물질의 영적인 만남이 있는데, 그게 내 손으로 완성되는 거야.”
-에그 맨 中
“옛날 애들은 이런 식이 아니었어. 물론 네게만 뭐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말이야. 요즘은 미지근해. 사회 전체가 온실재배라고나 할까, 머리는 어린애인 채로 몸만 어른이 되어버린 놈들이 활보하고 있지. 그런…….”
-C10H14N2(니코틴)과 소년―거지와 노파 中
인간은 늘 그릇된 행동으로 귀결하는 종이라는 결론이기 때문에 미래는 없다. 그냥 내버려두면 가까운 장래에 인류는 멸망하고 곤충과 점균류가 지구를 뒤덮을 것이다.
-오퍼런트의 초상 中
가장 소중한 것,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모두 떠난다. 내 삶은 그런 인생이었다.
-끔찍한 열대 中
목욕탕에 들어가 온몸을 열셋으로 구분하여 각각을 열세 번씩 닦았다. 이제 타타르의 액은 씻겨나갔을 거라고 생각하고 두꺼운 차광 커튼을 쳐둔 캄캄한 침실에 누웠다. 그래도 머리맡의 디지털시계가 6시 11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고 얼른 일어났다. 그래도 6시 11분은 611이라고 읽을 수 있으니 이것은 13의 47배라는 생각을 하고 눈가리개를 한 뒤 ‘잠자는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래……. 죽음은 불행이 아니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지. 슬픈 일이지만 불행은 아니지. 나 또한 지금 분명히 죽어가고 있는 인간 가운데 한 명이야.”
-괴물같은 얼굴을 한 여자와 녹은 시계 같은 머리의 남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