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날개 달린 어둠

uragawa 2014. 11. 6. 22:00

“창아성에 장미는 피지 않아요. 유가오 씨. 붉은 장미도 노란 장미도 파란 장미도…… 검은 장미조차도.”

빛이 닿지 않는 곳에 꽃은 피지 않는다. 태어나는 건 하얀 알비노 뿐이다.

“지금까지의 얼개로 흘러간다면 하얀 까마귀도 사라져버리겠죠.”

의외의 말이었다. 평면 세계를 이야기하던 중에 느닷없이 시계열時系列이 끼어 들었다.

 

 

 

기사라즈는 잠시 생각하는 척했다. 척……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가 할 말을 떠올리는 데 일 초씩이나 걸릴 리 없기 때문이다.

 

 

 

“글쎄.”

언제나 그런 말만 앞세운다. 그 이상은 알려줄 수 없다는 뜻이리라.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뜨뜻미지근하지만 등줄기를 싸늘하게 식히는 바람이 불어왔다. 휘이익, 하고 불길한 울림을 내며 출구 쪽으로 흘러간다. 푸른 까마귀의 발소리일까?

계단을 내려갈수록 흙내음이 코끝을 찔렀다. 죽은 자의 냄새였다. 그렇지만 썩는 냄새와는 또 달랐다. 생리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급하실 거 없습니다. 나는 아름답게 싸우고 싶거든요. 하늘에 태양이 떠 있을 때 말이죠.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오고 나서 고작 두명밖에 안 죽었어요. 기사라즈가 여기서 달아나기 전에는 다섯 명이나 죽었는데요. 아무래도 내 시간은 아주 성미가 급한 모양입니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밀실을 꾸미는 이유는 크게 여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각 경우를 하나씩 맞춰보도록 하죠.

첫 번째는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서. 고전 시대부터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가장 그럴듯한 해석이고요. 하지만 이토·아리마 살인사건에서는 이토의 머리와 아리마의 몸이 밀실 안에서 발견되는 상황을 범인이 만든 게 확실하니 자살설은 부정됩니다.

두 번째는 특정 인물을 범인으로 몰기 위해서입니다. 즉 방 열쇠를 가진 유일한 사람, 혹은 『유다의 창』처럼 그 방에 함께 있었던 사람이 범인으로 의심받기 마련이니까요. 이 또한 이번 사건에는 맞지 않습니다. 히사는 이미 살해되었고 가정부한테 살인 혐의를 뒤집어씌우려는 의도는 전혀 보이지 않았거든요.

세 번째는 범죄의 입증을 방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제아무리 혐의가 확정적이라도 밀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기소를 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건 『공작의 날개The Peacock Feather Murders』에서 헨리 메리베일 경이 했던 말이지만, 대단히 소극적인 작전이죠. 게다가 만약 밀실 수수께끼가 풀렸을 때의 위험을 저울에 달아보면 이 시도가 아주 위험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밀실은 그걸 꾸민 사람을 가리키니 말입니다. 밀실을 만들 만큼 똑똑한 지능범이 자신의 신변을 지키고자, 언제 밝혀질지도 모르는 밀실을 만들고서 넋 놓고 앉아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보통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이유를 모두 담아서 밀실을 만드니 이 경우도 제외되는군요. 무엇보다도 우네비 살인사건이나 시즈마 살인사건만으로도 살인죄를 입증할 수 있으니까요. 이 역시 무의미 합니다.

네 번째는 모든 것이 우연의 장난이고 범인에게 밀실을 꾸미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겁니다. 우연히 밀실이 되었다, 혹은 마침 밀실이었다는 거죠. 하지만 빗장이나 하강식 자물쇠라면 몰라도 우연히 열쇠 구멍에 열쇠가 꽂히고, 우연히 그 열쇠가 왼손에 들어가는 건 상식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되죠. 그래서 이것도 제외.

다섯 번째는 밀실에 아무런 의미도 필연성도 없으며, 그저 범인이 자신의 허영심을 채우려고 꾸몄다는 겁니다. 모든 게 다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죠. 이건 기사라즈가 채택한 가설로 지금 단계에서는 가장(필연성이 없기에)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이 설을 부정할 근거는 당연히 없고요.

여섯 번째는 직업병 때문입니다. 만약 범인이 딕슨 카나 오구리 무시타로라면 장인정신이 화가 돼서 저도 모르게 밀실을 만들었다는 거죠. 하지만 그런 인물은 여기에 없습니다. 뭐, 굳이 꼽는다면 이 메르카토르겠지요. 또한 이런 이유 말고도 동물 범인설 등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모두 특이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대부분 이라 분류에 넣을 수 없습니다.”

메르카토르는 일장 연설을 끝내고 몸에 힘이 빠진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예상대로) 결론은 도출되지 않았다. 그저 시간만 낭비한 꼴이다.

 

 

 

나는 가져온 책을 꺼냈다. 엘러리 퀸의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병원에 잘 어울리는 책이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우선 죽어야 한다. 구스타프 말러의 말이다. 하지만 운명이 휘두른 망치에 얻어맞아 송장이 되어버린 스카히코에게 영원한 삶이란 공허한 의미에 불과했다.

 

 

 

“이건 유일한 논리적 해답이에요. 저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당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죠. 그리고…… 나는 당신이 바라는 걸 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