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은 기묘한 꽃이다. 벚꽃이 핀 것을 보면 굉장히 득 본 기분이 든다. 다른 꽃은 이 정도는 아니다. 벚꽃이 피면 좌우지간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드는 건 왜일까.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일본인과 벚꽃의 관계에는 어딘가 영적인 면이 존재한는 것 같다. 무엇보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도 벚꽃이 있지만, 외국에서 피는 벚꽃은 가령 일본인이 좋아하는 왕벚나무 꽃이라도 전혀 다른 꽃이다. 벚꽃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일본 풍토에서 나고 자랐을 때 벚꽃은 비로소 벚꽃이 된다. 다몬은 골똘히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발은 제2의 심장이라는 말이 있다. 걸으면 걸을수록 뇌에 산소가 공급되어 사고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한다. 예로부터 철학자와 과학자는 산책 중에 사색의 실마리를 얻었다. 그러나 다몬은 그런 설이 납득되지 않았다. 사고 활동이 활발해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의 경우 머릿속에 의문이 소용돌이를 그려 사고가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잡생각만 자꾸 든다. 걸으면서 한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어디에 있건 집중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다몬은 산책을 좋아해서, 걷다보면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점점 기분이 고조되어 이윽고 머리가 텅 빈다.
생명활동을 정지한 인간은 어째서 그렇게 기이한 물체가 되는걸까. 다몬은 뇌리에 박힌 강물 속의 등을 떠올리고 몸서리를 쳤다.
위화감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됐기 때문인가. 감정을 상실했기 때문인가. 누가 치우지 않는 한 그곳에 계속 존재하기 때문인가.
“다몬은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워 보여. 국적도, 계급도, 성별도.”
“그렇지 않아. 난 느끼기만 할 뿐 생각하지 않아. 선택하지 않아. 그건 아주 비겁한 일이잖아? 뭔가를 방기하는 게 아닐까 싶을 때도 있어.”
“흐음, 재미있는걸. 하지만 그렇게 말하자면 세상일이라는 게 원래 늘 집단 히스테리 같은 거 아냐? 축제도 그렇고, 유행도 그렇고, 아이돌 가수도 그렇지. 주식하고 부동산이 오르는 게 가장 으뜸가는 예잖아. 그게 괜찮은 것 같다. 그걸 갖고 싶은 것 같다고 모든 사람이 일제히 그렇게 느끼는 거야. 집단 히스테리에 의해 세상이 움직이고 소비가 증진돼.”
다몬은 남은 아이스커피를 빨대로 마시며 중얼거렸다.
“그럼 연애는?”
잔이 어딘지 모르게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다몬을 흘깃 보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히스테리지.”
- 나무지킴이 사내 中
“일본 사람들은 이제 편의점 없이는 못 살 거야. 필요한 건 뭐든 다 있겠다, 정보 기지 역할도 하겠다, 생활의 모세혈관이나 다름없잖아? 요새는 젊은 사람뿐 아니라 고령자도 많이 이용하고.”
다몬은 서서히 긴장되었다. 료스케의 미소는 우아하고 지적이고 빈틈이라고는 없다. 감정을 완벽하게 감추고, 누구에게도 파고들 기회를 주지 않는다.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다몬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침묵. 죽음 같은 침묵이 흐릅니다. 자기 발소리하고 숨소리만 들리죠. 산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까지 부스럭 소리 하나 들리지 않습니다. 인정받지 못한 당주가 첫 참배에서 돌아오는 길에 목을 맨 적도 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다.
다몬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우아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해야 한다.
-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 中
“전 의사라는 직업하고 안 맞더라고요. 의학부에 들어갔다고 다 의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다모쓰는 말수는 적어도 말에 신뢰가 있는 가는 타입이었다. 허튼 면이 없고 자기 언동을 정확히 파악하며 제어할 수 있는 사람. 그야말로 의사에 어울리는 타입 같은데.
“무서운 꿈이라.”
아닌 게 아니라 어린애는 이따금 유달리 무서운 꿈을 꾸게 마련이다. 그야말로 트라우마가 될 것 같은 꿈을. 대체 이유가 뭘까. 유전자에 축적된 선조의 기억이 그런 꿈을 꾸게 하는 걸까. 인류 공통의 집단적 무의식이 뭔가를 경고하는 건가.
그러나 좀더 명백한 이유도 있다.
어린애가 무서운 꿈을 꾸는 것은 실제로 어떤 무서운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 환영 시네마 中
밤의 열차 차창에 비치는 얼굴이 데스마스크처럼 보일 때가 있다.
무서운 이야기.
그런 것은 굳이 찾지 않아도 주위에 얼마든지 뒹굴고 있다. 사고, 지진, 병, 구조조정, 스토커, 석면. 그러나 요새 실록 괴담이 점점 더 인기를 끄는 것은, 고전적인 유령이나 저주 이야기가 오히려 향수를 자극하고 누구나 공유할 수 있어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세계가 이토록 세분화되어 세대 및 집단 간에 가치관의 차이가 현저해진 지금, 공유할 수 있는 것은 공포감뿐인지도 모른다.
비극과 희극은 정말로 종이 한 장 차다. 무서운 이야기와 웃기는 이야기 또한 거리가 거의 없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리라.
철들었을 무렵부터 늘 이렇게 열차를 타고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있었던 것 같다.
언제나 이렇게 홀로 열차에 실려 밤의 밑바닥을 가고 있었다.
현기증 같은 기시감이 엄습했다. 이다음에 정신이 들어보면 노인이 되어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이 음반 제작사에서 일하며 늘쩡늘쩡 세상을 살고 있는 불량 중년인 줄 알고 있지만, 퍼뜩 정신이 들어보면 죽음을 눈앞에 둔 노인이 되어 이렇게 열차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닐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구로다는 다몬 옆에 서서 창문에 몸을 기댔다.
“글쎄. 그냥 멍하니 있었어. 이런 식으로 열차에 실려 가다보면 어느새 인생의 종점에 도착하게 되는 걸까 하고.”
“그건 말이지.”
구로다가 웬일인지 부드럽게 웃었다.
“우리가 엄연한 중년의 위기에 돌입했다는 뜻이야.”
“뭐?”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중년의 몸부림이라고. 야간열차에서 괴담을 이야기하고, 사누키 우동을 먹고. 인생의 후반에 접어들었다는데 동요하고 있는거지.”
“그런가.”
“그래. 나도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가정을 꾸리는 데 실패했지. 본인의 감각으로는 인생이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세상 사람들 보기엔 어엿한 중년인 거야. 가끔씩 불안해진단 말이지.”
- 새벽의 가스파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