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인질의 낭독회

uragawa 2014. 8. 23. 21:30

가족들의 혼란과 걱정, 병상에 누운 운전사와의 인터뷰, 게릴라 조직의 실태 등이 한차례 보도되고 사건 직후의 충격이 가시면서,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이 간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머나먼 어느 산속에 갇혀 있다는 여덟 명을 어느새 서서히 잊어갔다.



지금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차분히 생각하는 것과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게다가 생각할 것은, 언제쯤 풀려날까 하는 미래가 아니다. 자기 안에 간직한 과거, 미래가 어떻게 되든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 과거다. 그것을 살며시 꺼내 손바닥으로 보듬어 덥히고 말[言]의 배에 태운다. 그 배가 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익숙한 곳에서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차라운 돌들에 둘러싸이고 촛불 불빛 밖에 없는 폐옥에 자신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게 한다. 범인들조차 그런 자신들을 가로막지는 못하리라.



zo(코끼리)

“코끼리는 영어로 써도 똑똑해 보이는걸.”
주인이 말했다.
“대문자가 없어서 죄송해요.”
“크고 작고는 상관없어. 코끼리가 훌륭한 건 크기 때문이 아니야.”
“z가 사과를 입으로 가져가는 코로, o가 엉덩이로 보이네요.”
“그래, 이름은 몸을 나타내지.”
주인은 만족스레 말했다.
-둘째 날 밤 메아리 비스킷



우연히 길을 안내해준 노인이 어떤 언어를 말하는 유일한 생존자였다는 사실을, 나는 기이한 기분으로 돌이켜 생각했다. 죽은 자를 안심시키고 산 자를 위로하기 위한 기도가, 기본 적도 없는 어느 머나먼 마을의 헐벗은 산속 동굴 안에 울려 퍼지는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동굴 밖으로 나오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말들은 세계 유일의 안주의 땅인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죽은 이를 떠나보내려 하고 있다. 어둠과 분간되지 않는 검고 울퉁불퉁한 바위로 뒤덮인 그곳은 몹시 선득하고 춥다. 발치에는 차가운 샘물이 흐른다. 팔을 뻗어봐도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고, 희미한 램프 불빛이 비추는 것은 관 속에 누운 죽은 이의 얼굴뿐이다.

어느새 그 얼굴이 지금 말하고 있는 노인으로 보였다. 아아, 그런가. 그가 죽으면 한 언어가 죽는 건가. 그러니 이것은 언어의 죽음에 바치는 기도다. 모두 동굴에 스며든 음향의 잔재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일에 대개 만족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한마디 하지 않는 일도 많았지만, 외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같은 전철을 타고 8시 50분에 타임카드를 찍는다. 점심에 사십오 분, 오후 3시에 십오 분 휴식을 취하고, 5시에 퇴근한다. 한 달에 두세 번 야근할 때는 학생 식당에서 산 초콜릿 빵을 먹으며 밤늦도록 집중해서 일한다.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돌아오고(주민 회관 앞을 지난다) 휴일에는 자연사 박물관을 견학한다. 월급날이 되면 조금 사치해 침술원에서 스페셜 코스로 안정(眼精) 피로를 푼다. 밤에는 위스키를 조금 마시고 안마당 너머 맞은편 연립의 창문을 바라보며 지낸다. 커튼에 얼핏 비치는 그림자를 그저 멍하니 바라본다.

이것이 내 생활이었다. 
-셋째 날 밤 B담화실



밤에 잠 못 이룰 때면 캄캄한 방에서 비행기를 들고 창유리로 비쳐드는 어스레한 달빛에 비춰보며 그것이 너른 하늘을 비행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남편 생전에는 왜 그런 완구에 열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찬찬히 관찰하니 동체의 둥그스름한 느낌이며 프로펠러의 비틀림, 날개가 그리는 곡선 등이 실로 세밀하게 재현되어 있어 나도 모르게 어루만지게 되곤 했다. 접착제와 도료 냄새가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고 기체 구석구석에 남편의 손가락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남편 다음으로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은 모두 나이와 상황으로 볼 때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있었다. 남편의 부모가 아들을 앞세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잇따라 세상을 떠났고, 오랫동안 자리보전하던 친정어머니는 고향의 노인 시설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으며, 남동생은 해외로 발령받아 부인과 함께 이스탄불로 부임했다. 현지에서 태어난 조카딸은 사진으로 얼굴을 알 뿐이다. 결혼 전 부터 남편이 키웠던 고양이 미미오는 싸락눈이 흩날리는 한겨울의 저물녘, 스물한 살로 천수를 다했다. 

이렇게 맞댄 두 손에서 손가락 사이로 물이 새어나가듯 다들 멀어져가는 것을 나는 그저 잠자코 배웅했다. 내 손바닥을 내려다보면 조그마 공동이 남아 있을 뿐 이제 더는 새어나갈 것도 없었다.



창은 이미 충분히 멀리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청년은 만족하지 않고 연습을 계속했다. 창을 투척한다. 그저 그것뿐인 연습이었다. 창던지기 선수가 창을 던지는 연습을 한다는 이 당연한 풍경이 왠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은 육체를 쓰는 운동인 동시에 고독한 사색이기도 했다.

-여섯째 날 밤 창 던지는 청년








2014/08/24 - [먼지쌓인필름] - 인질의 낭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