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세번째 제물의 야회

uragawa 2014. 5. 12. 17:26

절망이란 자신이 변할 수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누군가 타인의 손에 생사여탈권이 쥐어진 채, 자신에게는 자기 자신도 환경도 바꿀 힘이 무엇 하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계속 온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것이다.



2월의 비에는 물독을 쏟아 붓는 것 같은 격심함은 없었지만, 유리가루처럼 차가운 작은 물방울들이 북풍에 밀려와 오코우치의 볼이나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난관 中



소중한 것은 지속되지 않아. 지속이란 오히려 무참한 것이지. 거기에 무엇 하나 깃들지 않는다. 지속되는 가운데 사람은 멸시당하고 평범함으로 떨어지지. 무리지어 모이고 분류되어 누군가와 같은 얼굴로 계속 살아가기를 강요받아. 너도 알겠지. 다만 지속될 뿐인 생은 기만에 가득차고 그것이 부정을 불러와 인간을 보신에 얽매이게 해. 단절하고 재생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지.



<좋아 들어봐.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게 아니야. 양자는 바싹 달라붙어 존재하고 있어.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겠지. 삶 안에는 죽음이, 죽음 안에는 삶이 포함되어 있다고. 게다가는 이렇게 바꿔 말해도 될 거야. 삶과 죽음이란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라고. 그런데 문명은 죽음을 계속 은폐하고 있어. 특히 현대의 이 나라가 그래. 죽음을 은폐하는 것으로 덧없는 번영이나 행복을 연출해서 사람들을 계속 속이고 있지. 하지만 그 결과로 얻어진 것은 뭐지? 거짓된 삶뿐이다. 죽음이 은폐되고 멀어져가면 삶도 빛을 잃어버린다. 아이는 설레어 하지 않고, 젊은이는 꿈을 이야기하지 않고, 어른들은 그저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 노동에 몸을 바치고, 노인들은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고 잊혀지지. 빛을 잃은 이 나라의 현실은 삶과 죽음이 서로 보완하고 서로가 서로를 높이는 것을 잊어버린데 대한 결과인 거야. 이 퇴색한 세계는 길들어진 삶의 모습 그 차제다.>

-접촉 中



어떤 심정으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집에 돌아가, 그 방에서 무엇을 생각하면서 보내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작은 아픔이 가슴속을 스쳤다. 혼자서 보내는 것에는 익숙했다. 아무런 지장도 없다. 하지만 미나미를 잃고 미나미가 없어진 그 집에서 혼자 밤을 맞이한 적은 없었다. 그것이 어떤 밤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어, 뭔가에 눌러 짜부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술이 풀리기까지 몇 초가 지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꽉 움켜진 듯 구경꾼들이 일제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공황이 일어나는 순간을 오코우치는 눈으로 보았다. 한순간을 경계로 해서 같은 인간의 인생이 그때까지와 다른 인생이 된 것이다. 모두 다 어딘가를 향해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발이 걸려서 쓰러진 사람 위에 다른 사람이 덮쳐눌렀다. 그리고 그 등 뒤에서 다른 사람이 넘어지고, 욕설과 비명이 소용돌이쳤다. 상황을 보도해야 하는 방송국 스태프를 비롯한 언론관계자들도 멍하니 사태를 지켜볼 뿐이었다.



오코우치는 걸어서 선로의 아래로 들어가 선샤인60 길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혼잡한 곳을 걷고 있으니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피로 탓에 소리의 원근감이 이상해져서 어딘가 먼 곳에 있는 차의 경적소리가 고막에 갑자기 들러붙거나, 아이의 웃음소리가 마음에 걸려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도 했다.



문제는 두 가지, 이렇게 자신을 몰아가는 방향이 올바른가 어떤가, 그리고 몰아간 끝에 있는 인간을 정말로 비난하고 싶은가 하는 것이었다. 조사를 함에 따라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은 강해졌지만, 그 끝에 있는 인간을 비난하고 싶은가는 도저히 대답을 낼 수 없었다.

-통곡 中



그렇지만 결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유는 알고 있다. 형사라는 일에서 어떤 의의를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형사를 그만두면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자신이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뒤의 인생을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몰랐다.



그때 마음이라는 것은 자기 것이어도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 절실하게 실감했어. 결코 자기 마음은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고 뜻밖의 곳으로 굴러가는 거라고.

-폭주 中




 



2012/03/21 - [☆텅빈도서관] - 두번째 제물의 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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