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인생만 살다 보면 자신이 뭐가 하고 싶어 이곳에 있는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아무튼 살아 보자고,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때로 이렇게 사는 것은 느린 자살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앞이 없고 허전해서 선뜩한, 그런 때가 가장 즐겁다.
언제나 비행기든 차든 전철이든 타고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이 떠다닌다는 것을 잊을 수 있다.
이동을 시작할 때만 좋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조금은 우울해진다. 또 지상으로 내려가 그 속의 시간에 발을들여놓아야 한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소용돌이치고 있고, 나는 그곳에 조금씩 포박되어 무언가를 받기도 하고 또 빼앗기기도 한다. 그런 것이야말로 삶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이 싫다.
“네가 스스로 인생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쇼이치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너무 슬프잖아.”
“그런 건 아니지. 난 나로 태어나서, 나만의 감각과 사고방식이 있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절대 슬프지 않아.”
신호에 걸려 먼춰 선 네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저씨와 아줌마,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이, 젊은 이가 뒤죽박죽 섞여 서 있었다. 차들은 강물처럼 흘러갔다. 이제 이 사람들 모두가 어딘가로 향할 것이라 생각하니, 그 숫자에 짓눌려 정신이 까마득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일단 혼자가 아니고, 쇼이치와 차를 마시러 카페를 찾아가고 있다.
그것도 괜찮겠네, 하고 선택할 수도 있지만 괜찮겠네 정도로 충분할까, 그런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세계의 색깔이 갑자기 선명해져서 나는 놀랐다. 움직이는 종업원까지 아름다워 보였고, 눈앞에 있는 식물의 색도 갑자기 짙게 빛나 보였다. 큼지막한 창문으로 비치는 햇살마저 갑자기 성스럽게 느껴졌다. 누군가가 필요로 한다는 것…… 이렇게나 진부한 표현이 이렇게나 사람에게 영향을 주다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많지 않을 거야. 사람은 훨씬 더 무겁고 불확실한 존재야. 산뜻하지 못하고, 자기도 모르는 마음속 애매모호함을 행복한 사람에게 터뜨리잖아.”
고요한 마음이란 낙담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명랑한 것이 아니라, 비유하자면 추운 날에 따뜻한 집 안에서 보는 눈 내린 경치 같은 것임을 이제는 안다. 평소와 다른 빛의 각도에 세계가 고루 아름답고 밝게 보인다. 햇살은 없어도 모든 것이 차분한 밝음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