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이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절망을 기억하고 있다. 누구나 이곳에 오면 쾌활함을 상실하고 울적하고 나른한 표정이 된다. 한 걸음 밖으로 내딛는 순간, 후끈 하고 몸에 들러붙을 것 같은 고온다습한 공기에 압도당한다. 그것은 언제나 배부른 짐승이 얼굴에 대고 숨을 내뿜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지금은 배가 부르니까 살려주지만, 언젠가 배가 고프면 한입에 물고 날카로운 이빨로 찢어발겨 주겠다. 고 선고라도 받는 느낌이다.
“그래요, 살아있는 인간처럼 무서운 것도 없지요, 사람을 잡아먹는 건 인간뿐이니까.”
같은 속도로 천천히 돌아가는 시계바늘이 하루의 8분의 5를 지나면 갑자기 하늘은 흐려지고, 창가의 화분에 물 줄 시간이나 된 듯 쏴아 하고 세면기를 뒤집은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기억이란 참 재미있어요. 이것만은 잊으면 안 된다, 이것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몇 날 며칠에 걸쳐 준비했던 것을, 막상 당일이 되면 깜빡 잊어버리고 말죠. 항상 하던 일을 막상 말로 표현하려고 하거나 설명하려고 하면,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말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지워지고 백지상태가 되어버립니다.”
“나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후회할 여유 같은 건. 하지만 나는 내 과거를 후회하지 않아요. 만일 돌아보려고 생각했다면, 그리고 돌아보았다면, 그 순간 나는 소금 기둥이 되어 무너져 내렸을 거예요.”
“나의 영혼만큼은 나의 것. 누구에게도 속박되지 않아,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아. 내 영혼에는 그 어떤 직위도 없어, 선조도, 왕위도, 교회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자와 여자조차도 나를 물들일 수는 없어. 내 영혼 만큼은.”
유유히 비둘기가 날아가고 있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음침한 검은 탑에서 보이는 것은, 사각으로 잘린 좁은 하늘뿐이다. 새가 되고 싶다. 하늘을 날고 싶다. 언제나 그녀는 뚫어져라 하늘의 한 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언젠가 연한 보랏빛 히스가 만발해 있는 언덕을, 혼자서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않고 달려보고 싶다. 달랑 혼자서, 아무도 없는 언덕 위를 , 석양이 질 때까지 한없이.
좁아진 세계, 내 몫이 나날이 적어지는 세계. 일개 노동자에서 일국의 재상까지, 너나할 것 없이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고 서로의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빨아먹으려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