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고글 쓴 남자, 안개 속의 살인

uragawa 2014. 3. 11. 21:38

하지만 나는 요즘 들어 진실을 완전히 알아버렸다. 원자력은 미래의 에너지 따위가 아니다. 증기기관에 속한 낡은 기술이자 이미 끝장난 과학이다. 그 증거로 대학에 원자력 학과가 없어졌다. 학생이 없어진 것이다. 이 과학은 학문적으로도 더는 미래가 없다.



모든 것이 안개 밑으로 가라앉으면 좋겠다. 깊고 깊게 잠겨버렸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될 정도로, 이 불결하고 고약하고 외설스럽고 피와 배설물의 악취로 가득한 어리석고 용렬한 세상.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나의 인생. 그것들이 무엇 하나 보이지 않게 될 정도로 안개에 깊이 잠기면 좋겠다. 그리고 그대로 소멸해 사라져버리면 좋겠다. 흔적도 없이.



비명을 지른 건 덩어리 주위 돌 위로 비어져 나와, 퍼져가고 있는 검붉은 액체 때문이었다. 엄청난 양이었다. 골목길의 끝에서 끝까지 퍼져 있다. 사람의 몸 안에 이토록 많은 액체가 들어있다니. 그런 믿기 어려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곧이어 여기를 지나가려면 이 액체를 밟을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한다. 길가에 가로놓인 사람 모양의 물체보다도 자신의 신발이 그 진득한 액체를 밟는 그런 공상이 강한 혐오감을 가져와 아키코는 비명을 지른다.



그림자는 현실이 아니다. 단지 환상이다. 사라져간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러니 내가 본 것은, 아니 본 것 같은 것은 실제로 보일 리 없는 자신의 뒷모습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면서 좋은 사람인 척하고 있지만, 뱃속은 시커멓다. 그리고 안 보이는 곳에서는 모두 비슷한 짓을 하고있다. 그런 주제에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을 바보 취급하고, 비웃고, 그런것이 세상이다’라고.



주변에 인적 따위는 없습니다. 제 분노의 양은 충분했고, 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살아있으면 나는 파멸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