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회귀천 정사

uragawa 2014. 2. 10. 23:12

사람의 목숨이, 그 한 송이 꽃을 묻기 위한 의식이라면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뒷모습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스치는 것이라면, 대필가와 오누이가 말 없는 뒷모습으로 저승의 어둠 속으로 가져가려 했던 그 진상을 저 역시 뒷모습으로 배웅하고 싶습니다.

- 등나무 향기 中



한번 말라 시들어버린 꽃은 그저 모든 것이 시들어 떨어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평소라면 다양한 색채의 화사한 네온사인들이 한데 얽혀 연기처럼 부옇게 일어나 밤거리를 비추었을 텐데 그날 밤은 어둠이 바닥을 핥고 있었다. 등불이 꺼지면 사라져버리는 거리가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도라지 꽃 피는 집 中



형님은 짙은 어둠을 칠한 우산처럼 침묵을 활짝 펼치고 언제나 그 안에 쏘옥 들어가 자신의 진짜 얼굴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면이 있었다.



전쟁터에서는 관을 준비할 여유 같은 것은 없으니 그것이 곧 화장이었다. 시체를 태우기 위해 관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국 땅 들판에서 불타는 불꽃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시체를 태우기 위해 관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관을 태우려면 시체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동나무 관(棺) 中



드문드문 떠오르는 기억을 잇는 실타래는 세월의 어둠이라는 칼날에 의해 끊기고, 뿔뿔이 흩어진 파편이 되어 기억 속에 떨어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제 인생은 말하자면,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장면들을 근거로 유년시절에 숨겨져 있는 하나의 이야기를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나는 알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죽음이 당장에는 믿기지가 않아, 어머니의 다음 말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앉아 있었습니다. 실제로, 죽은 어머니의 얼굴은 아직 못다한 말이 남아 있었는지 색깔을 잃어버린 입술이 살며시 열려 있었습니다.

옅은 어둠으로 물든 장지문에 한 마리 하루살이가 스며들듯이 비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그 그림자가 늘어지기 전에 짙은 어둠이 떨어지고, 그 어둠이 숨을 거둔 어머니의 얼굴을 덮을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흰 연꽃 사찰 中



달이 구름 뒤로 숨고, 어둠이 깊어지면 물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까지 신경도 쓰이지 않았던 물소리가 한꺼번에 주위에서 울려퍼졌다.

이 근처는 무수히 많은 모래섬 사이로 가느다란 가닥으로 갈라진 강물이 거미줄처럼 교차하는 장소로, 물의 속도가 곳곳에 따라 다르다. 물가를 미끄러지고, 소용돌이 치고, 소에 고였다가 갈대에 걸리는 등 상황에 따라 다른 다양한 물소리는 마치 종소리처럼 어둠 속에서 연주되었다.

하늘에도 흐름이 있다.

뒤에 숨은 달이 뿜어내는 역광을 바당 구름의 그림자는 다양한 농담으로 색칠한 듯했고 검은색 색종이를 뜯어 흩뿌린 것처럼 하늘의 흐름을 타고 떠다녔다.

바람에 날린 별은 지평선 가까이 떨어져 인가의 등불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 희미한 불빛의 먼지는 반딧불의 덧없는 불빛처럼, 나와 아야코 두 사람의 목숨 또한 다 타버리지 못한 채 하늘과 땅이 하나 되어 끝없이 펼쳐진 어둠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회귀천 정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