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카페오레가 새로 나왔네. 175엔이면 스타벅스보다 싼데. 가만있자, 여기가 어디였지? 음, 패밀리 마트로군. 앞으로는 패밀리마트만 찾아다녀야겠어. 이 정도 크기 카페오레는 흔할 것 같으면서도 좀처럼 없단 말이야.
준페이에게 등을 떠밀려서 도모키도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준페이가 “찬찬히 설명할 테니까”라고 말을 꺼낼 때는 대체로 좋은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기분 좋게 연주해도, 아무리 멋진 곡이라도 악보에는 끝이 있고 마지막 음표가 그려져 있다.
연주가 끝난 후에도 미나토는 한동안 눈을 감은 채로 앉아 있었다. 마지막 선율이 홀 맨 끝까지 가 닿으며 그 선율이 서서히 홀에 흐르는 시간 속으로 녹아드는 순간, 폭발하는 듯한 박수 소리가 일었다.
사와가 안뜰용으로 준비해 둔 슬리퍼를 꿰신고 화단 쪽으로 걸어갔다.
팬지와 제비꽃이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흔들릴 때마다 꽃향기가 감돌았다. 사와가 허리를 굽혀 꽃을 만지려 하자 배추흰나비 두 마리가 날아올랐다.
배추흰나비가 서로 장난을 치듯 사와 주위를 날아다녔다. 눈으로 쫓는 것만으로도 마치 자기까지 배추흰나비와 함께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얼굴에 내리 쬐는 햇볓이 기분 좋았다. 깊이 들이마신 공기도 맑고 깨끗했다.
사와는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싶어졌다. 맨발로 땅을 느껴 보고 싶었다.
이 나이 먹어봐, 칭찬받을 일이 당최 없어. “사와
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건강하시네요” “사와 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잘 드시네요”라는 칭찬밖에 없단 말이지. 어쨌거나 사람은 남한테
칭찬받길 좋아하게 마련이라 미네코가 만들어 주는 날도 일주일에 세 번 주문하는 택배 도시락도 가끔은 억지로 끝까지 먹을 떄가 있단
말이여. “어머나, 오늘도 다 드셨네. 사와 할머니는 정말로 만들어 드린 보람이 있다니까”라고 미네코가 말해도 기분이 좋고,
“어이쿠, 할머니, 오늘도 다 드셨네요”라고 택배기사 소네다 씨가 말해도 우쭐해 진단 말이지.
참 신기한 일이야, 이젠 아무것도 필요 없어. 이제는 아무것도 갖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니까 비로소 가장 원했을 것 같은 게 저절로 굴러 들어오네. 정말 신기해.
“……준페이 같은 사람이 정말로 국회의원이 된다면
왠지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지 않아? 딱히 누구한테 괴롭힘을 당하면서 살아온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보복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자잘하게 속상한 일쯤은 있게 마련이고, 그게 자잘한 일이라며 참고 살아가는 거잖아? 물론 준페이가 국회의원이 된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왠지 그런 자잘한 인내 같은 게 시원하게 날아가 버릴 것 가거든. 모두 그런 마음으로 준페이를
응원하는 거 아닐까. 오랜 세월 품고 살아온 짜증을 하나씩 지워 나갈 기력은 이미 없더라도 말이지.”
“전 그렇게 생각해요. 남을 속이는 인간에게도 그 인간
나름의 논리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남을 속일 수 있는 거라고. 결국 남을 속이는 인간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반대로 속아 넘어간 쪽은 자기가 정말로 옳은지 늘 의심해 볼 수 있는 인간인 거죠. 본래는 그쪽이 인간으로서 더
옳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세상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인간은 아주 쉽게 내동댕이쳐요. 금세 발목이 잡히는 거죠. 옳다고
주장하는 자만이 옳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사와가 사는 집에는 소리가 없다. 이렇게 가만히 이부자리에 누워 있으면 자기 혼자만 이 세상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