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은 말인데, 인간이 죄책감을 느끼는 건 처음 채찍을 휘두르기 전이 아니라 휘두르고 나서래.” 마을 외각으로 빠지는 도로를 향해 걸어가면서 줄리언이 말했다. 그러고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근데 정작 중요한 건 채찍질을 당하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 아니겠어? 죄책감은 사치야, 필립.” “들으면 놀랄지도 모르겠는데.” 줄리언이 부드럽게 말했다. “인생은 그림자 게임이라고, 친구.”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줄리언에게로 내려갔어야 했다. 인생에 해피엔딩만 있다면, 친구라면 마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창문에서 내려다보다가 어스름한 불빛 속에 앉아있는 자신의 친구를 발견했다면, 그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친구는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