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브스는 버스를 타러 가기 전에 좀 쉬고 싶었다. 주변 경치가 달라지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거나 낯선 냄새가 나면 예민해지는 성격이라 이동할 때는 좀처럼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그는 잠을 청하는 대신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한 채 차창을 스치며 지나는 마을과 도시를 응시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세상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겪고 모든 곳에서 악마를 보는 사람들과,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전혀 악마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나뉜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공포에는 한계가 있다거나 뼛속까지 파고들 정도의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편안한 생각을 다시는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열망도 있었지만, 그런 마음도 사그라진 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