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일수록 내 입에서는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는다.“짧은 만남이었지, 학사님.” 나는 쓸데없는 말을 거듭하기를 포기하고, 조용히 빛바랜 단행본 한 권을 책상 위에 두었다. 시마자키 도손의 『동트기 전』. “박식한 학사님에게 줄 책이 좀처럼 없어서 말이야.” “저한테요?” “읽은 적은 있겠지만.” “꽤 옛날입니다.” 학사님의 흰 손이 『동트기 전』의 낡고 붉은 표지에 닿았다. 몇 번을 넘겼는지 알 수 없는 표지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때가 묻고 마모되어 너덜너덜해졌다. 상하권으로 나뉘어져있었을텐데, 수중에 남은 건 상권뿐이다. “괴로운 이야기야.” 내 말에 학사님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결코 재밌는 이야기도 아니고 기분 좋은 이야기도 아니야. 갈등과 고뇌가 한없이 계속되는 이야기지. 그 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