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아한다 말을 해도, 아무리 다정하게 대해줘도 내겐 전혀 와 닿지 않는다. 피지도 못하고 저버린 개점축하 화환 속의 봉오리처럼, 냉장고 안에서 천천히 부패되어가는 생고기처럼, 내 마음속 한 부분이 시간의 흐름과는 상관 없이 꽁꽁 얼어붙은 화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과연 어느 시점으로 돌아갈까, 이따금씩 의미 없는 가정을 해본다. 식상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또는 친구들과 무의미한 수다를 떨면서.
낮 시간대 전철은 시원하고 밝다. 승객들은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운반되는 인스턴트 식품마냥,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얌전히 앉아 있다. 태양은 높은 곳에서 전철의 스테인리스 상판을 집요하게 내리쬐고 있다. 하지만 에어컨이 가동 중인 실내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하늘에서 보면, 이 전철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며 지렁이처럼 구불구불 시내로 달려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엄청난 충동이 일고 있다. 그것은 흘러넘칠 장소를 찾아 소용돌이 치고 있다. 나는 기다린다. 이 홍수가 내 안에 있는 메마르고 짓찧긴 흔적을 휩쓸어버릴 순간을. 두려움과도 상통하는 고양감은, 마치 복수의 전야처럼 내 몸을 뒤흔든다.
이루어진 약속과 이루어지지 못한 약속. 어느 쪽이 많을까 생각하다가 스이와 나를 연결해주는 건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건 정말 슬픈 일이었다.
나는 이제 기대는 하고 싶지 않다. 내 안에 기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조차 너무 괴롭다. 나는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고 싶다. 올리브 잎 한 장 남김없이, 내 안의 일말의 기대마저 멸하고 싶다. 아무것도 의지하지 말고 내 힘으로 헤쳐 나가고 내 힘으로 발판을 다져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바다. 그렇게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우리는 꼭 이제 말이 트인 어린애 처럼 “왜, 왜”를 반복했다. 왜 저녁놀은 핏빛을 하고 있지? 왜 우린 체액이란 걸 분비하지? 왜 거절과 허용 사이에서 망설이게 생겨먹은 거지?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침범당하고 싶지 않고, 어느 누구한테도 도움을 구하고 싶지 않다. 희망은 그 옛날 이미 부서지고, 비명은 소리로 발현되지 못한 채 꼬리를 감추었다.
나는 무섭다. 끝나는 게 무섭다. 알게 모르게 나는 떨고 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도 싶고 고백하고 싶기도 하지만 대체 누구에게 뭐라고 얘길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도 나를 1순위로 여겨주지 않는다. 선생님도, 나유타도 스이도. 말이 나온 김에 말하면 성적도 생김새도 난 어중간하다. 나는 늘 어중간한 위치에 혼자 물같이 서 있다.
흰 빛 속에서 텅 빈 나의 눈구멍이 꺼멓게 뚫린다. 그 구멍에서 구더기 같은 흰 액체가 꿀럭꿀럭 흘러나온다. 나는 울고 있다. 이 세상의 어떠한 생물도 들을 수 없는 주파수로 흐느낀다. 빛이 심장을 꿰뚫는다. 이 달콤한 통증을 나는 안다. 척수가 마비되고 나는 무너져내린다. 99리 해변행 전철은 역 구내로 들어와 입을 벌리고 내가 타기만을 기다린다.
짜증스럽다. 어린애처럼 직접적인 말로 무신경하게 남을 비난하는 이 아이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의 냉정함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도 고집스레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는, 어른스럽지 못한 나 자신에게도 신물이 난다.
책은 습기를 싫어해 인체에서 수분을 빼앗아간다. 책을 계속 만지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피부가 바싹 말라 허옇게 일어나고 갈라진다. 마치 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몸뚱이까지 종이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내 생각엔 이 모든 삭막함, 안타까움, 두려움은 자위自衛가 지나쳐 거의 자폐적이리만큼 자신을 사랑한 까닭에 생긴 것 같다. 비록 낙도에서 꿈처럼 이상적인 남자와 둘이 남는다 해도 분명 그 사람을 자신 이상으로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하철 역의 형광등 수를 늘려 밝게 했더니 자살하는 사람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고 지금은 거의 없다. 전등의 밝기. 전철의 속도. 죽음을 결정짓는 계기는 의외로 시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펼치고만 있던 책에 서표를 끼우고 나서 접었다. 설명은 잘 못하겠다. 그 말은 속으로만 읊조렸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해서 아무리 가까워지려고 해도 어느 한 순간에 홀로 되어버린다. 그래서 인간이라고 한 것이다.
아무리 말을 하고 또 해도 끊임없이 벌어져 소통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지는 않다. 어딜 가나 마찬가지다. 어딜 가나 혼자일 거면 차라리 나유타의 곁에 있고 싶다. 가 닿지 못한 말이 아무리 내게 허무로 닥쳐오더라도 거듭 말하고 싶어지는 상대 옆에 있고 싶다.
“자식이 죽어 슬퍼하던 여자가 부처에게 ‘내 자식을 소생시켜 달라’고 애원했어. 부처는 여자에게 ‘지금까지 죽은 가족이 한 명도 없는 집에 가서 겨자열매(양귀비 열매)를 얻어와라. 그러면 자식을 돌려보내주겠다’고 했대. 여자는 당연히 필사적으로 찾았지만 지금까지 죽은 가족이 한 명도 없는 집은 어디에도 없었지. 그래서 여자도 깨달았대. 사람은 누구나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며 살아왔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