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다크 존

uragawa 2013. 3. 7. 23:13

“다크 존은 무슨 일이든 일어나는 공간이다. 현실세계의 시간과 이곳의 시간은 완전히 다르다. 시간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같은 자리를 맴돈다. 그로 인해 다크 존에 사로잡힌 우리에게 시간은 사실상, 혹은 감각상 영원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금까지의 인생이란 늘 그랬다. 항상 이기는 일만을 생각했다. 대학 입시 준비도 그랬지만 우선순위는 낮았다. 무엇보다도 장기가 우선이었다. 장기에서 이기는 것만이 인생을 개척 해준다고 믿었다. 이기고, 이기고, 또 이기면 장기를 평생의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 거기서 또 이기면 일류 기사의 일원으로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대기업 직장인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

그러고도 또 이기고, 이기고, 이기면…….

 

 

 

재능 차이라면 이제 와서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지만 노력의 차이라면 절대 그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이만큼 노력했으니 충분하다, 할 만큼 했다, 사랍답게 살고 싶다?

그런 사고방식은 엿이나 먹으라고 생각해왔다. 보통은 그쯤에서 만족하거나 그만둔다. 그러니 거기서 멈추지 말고 더 노력을 들이면 그게 명확한 차이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No, No, No. 백 번 해도 No예요. 나는 교육자로서 자네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겠습니다! 사람은 포기하는 게 중요하다는 매우 중요한 교훈입니다. 쓸모없는 막는 말은 아무리 꺼내봤자 시간 벌기도 안 됩니다.”

 

 

 

항상 시간이 정지한 새까만 공간 속에 있었다. 자신은 장기판에 남겨진 단 하나의 장기짝 보였고 지금 당장이라도 잡힐 듯했다. 적은 비차나 각행, 향차처럼 무한한 사정거리를 가진 말이어서 멀리 떨어진 저편에서 이쪽을 겨냥한다. 아무리 필사적으로 도망쳐도 가는 곳이 어디건 끝까지 잘도 쫒아왔다.

 

 

 

한 남자가 자신의 아이가 태어난 데에 힘입어 잠재력을 이끌어내 끝내 목표를 이룬다는 성공 이야기. 그런 구시대적인 성공 신화에는 아무런 리얼리티도 느끼지 못한다. 현실에서 아기의 탄생은 커다란 장애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 밤 울어대는 바람에 수면 시간이 부족할 테고, 육아 스트레스로 이구치와도 싸움이 끊이지 않으리라. 장기만 생각해야 할 시간, 집중해서 장기 공부를 해야만 하는 귀중한 시간은 줄어들 게 불을 보듯 훤하다.

 

 

 

기분 전환이라는 명목. 이구치가 오고 싶어 한다는 구실. 실제로 나는 괴로움에서 늘 도망쳤던 것이 아닐까? 괴로운 척만 했을 뿐 실제로는 핑계를 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단 한번 이라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정도의 한계까지 노력해본 적이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