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받은 사람은 종종 오만하다. 복 받은 상태가 당연한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라도 빠졌을 때 맨 먼저 느끼는 감정은 노여움이다. 아이코가 집을 나갔을 때도 야스히코가 처음 느낀 것은 불편하게 됐군, 하는 불유쾌한 감정이었다. 시트를 세탁해 줄 여자를 찾아야겠어.
늘 결여된 인간, 늘 달리면서 무언가에 목말라하는 인간이고 싶다.
-다루마 산으로 가는 길 中
하고 싶은 대로 이야기를 하게 내버려 둔다. 부하직원들도 바보는 아니라 자신이 실패한 부분, 허술했던 부분을 교묘하게 에누리 하기도 하고 책임 전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빠짐없이 철처하게 보고를 시키면서 한두 곳 세세한 부분을 지적하면, 점점 실체가 들통 나면서 결국에는 처음과는 90도쯤 다른 보고가 된다.
머릿속에서 고무장갑을 낀 차가운 손이 슬슬 어루만지는 것 같은 기분 나쁜 감촉이 느껴졌다. 무수한 벌레들이 뇌속을 기어다니는 것 같은 소리가 난다. 빨간 빛이 점점 커지는데 눈을 떼지도, 밀쳐내지도 못하겠다. 문득 도키코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감촉이 되살아났다. 이제 만날 수 없다.
-오셀로 게임 中
하지만 결국은 모두들 같은 달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날마다 강해지는군. 낮이고 밤이고 늘 똑같은 달이 하늘에 떠 있고, 우리는 저마다 각각의 장소에서 그 달을 올려다보고 있어.
소생, 변함없이 상쾌한 기분으로 산길을 계속 걸었어. 맑은 하늘에 새하얀 달이 떠 있었네. 그 달을 본 순간, 왜 그런지 눈물이 나더군. 낮에도, 밤에도 달은 늘 있지. 모두들 같은 달을 올려다보고 있어. 소생,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 걷고 또 걸어서 무사히 산에서 내려왔다네. 두 번 다시 그 산에 오를 일은 없겠지.
-편지 中
“뭐가 진짜 인지는 아무도 몰라. 모든 생물이 단 하나의 길에서 가지쳐 나왓다느니 그런 건 거짓말이야. 진화법칙이니 빅뱅이니 하는 것도. 진실 같은 건 없어. 사실 같은 것도 없어. 기록된 순간부터 모든게 거짓말이 되어버려. 사실이란 건 그걸 본 사람이랑 시간에 따라서 얼마든지 무궁무진하게 해석될 수 있어.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고, 아무것도 없었는지도 몰라. 아주 먼 옛날에 우주인이 왔을지도 모르고, 마그마에서 인간이 태어났을지도 몰라. 올리브 잎사귀나 바다 물거품에서 생명이 태어났을지도 몰라. 문명이 몇 번이고 멸망을 되풀이하면서 그때마다 똑같은 운명을반복하고 있을 뿐, 지금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도 빙하 및에 잠들어 있는 공룡이 꾸는 꿈일지도 몰라…….”
-역사의 시간 中
“이것 봐, 원래 큰일은 눈앞에서 당연한 것처럼 일어나는거야. 자, 이제부터 큰일이다, 하는 식으로 찾아와주지는 않아. 눈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 눈을 속여가면서 무너뜨리는거야. 원숭이가 초콜릿에 도토리를 섞어서 파는 이야기 알지? 섞다보니 어느새 오히려 도토리양이 더 많아졌다, 그런 식인거야.”
- 잡초뽑기 中
요즘 너무 신경이 예민하다. 자기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신경과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알기 때문에 자기혐오에 빠지고, 또 그 때문에 예민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1등이 아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
지금 혼자 남은 아키코는 세상에서 자기 혼자만이 고독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결혼을 하면 이 고독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결혼한 친구들은 그저 다른 틀로 옮겨갔을 뿐, 새로운 고독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소속되고 싶어하던 그녀들이 소속됨으로써 잃은 것을 큰소리로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면 도무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홀로 산다. 몇 달 전부터 그 말이 사무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그런 말을 자기 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무서운 말이었다. 그럴 자신은 전혀 없었다.
도쿄에서 전단을 받아드는 것은 트러블의 원흉이다. 캐치세일즈, 신흥종교. 아무리 무례해도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시할 수밖에 없다. 서명에도 신경 써야 한다. 어지간한 일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뭔가에 관심을 보이면 그 즉시 온갖 것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관심 있죠? 갖고 싶죠? 사고 싶죠? 이제 와서 필요 없다니 무슨 헛소리야! 관심을 보인 건 너잖아!
유행을 따르고, 늘 예쁘게 차려입고, 생글생글 웃으면서 일하고,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저축을 하고, 누군가 먹여살려줄 사람을 찾고, 회사 동료들을 결혼 피로연에 부르고, 불만을 참으면서 집안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걸까. 열심히 일해봤자 좋은 일 따위는 하나도 없다. 일, 결혼, 아이, 집, 부모. 어떻게 하면 모두들 만족할까. 날 좀 내버려 두면 좋을 텐데.
갑자기 화가 난다.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데. 다들 나에게 대체 뭘 바라는 걸까. 화를 내면서도 아키코는 ‘다들’이 누구인지 잘 알 수 없었다. 다들, 다들, 다들이다. 아무도 내 기분은 알아주지 않는다. 내 사정 따위. 갑자기 눈물이 나서 아키코는 동요했다.
지옥이구나. 이 세상은 지옥이다. 다들 자기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저희는 일을 해서 돈을 법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눈앞에 있는 문제를 하나씩 처리하고 돈을 받아서 그 돈으로 생활합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 물건을 파는 사람,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물건을 만든다, 물건을 판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술을 연마하기도 하고 지혜를 쥐어짜기도 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가는 눈앞에 있는, 우리 모두의 공통 문제를 해결해서 돈을 받는 게 아닙니까? 정치는 일반인인 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자기들이 하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이상합니다. 그들이 만약 우리보다 머리가 좋다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합니다. 고용주는 우리입니다.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은 어려운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정치를 못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역량이 부족한 것입니다. 지금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는 문제 해결 능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아, 얼마나 잔인한 세상인가. 날마다 기를 써서 쌓아올린 것을 단 한순간에 빼앗아간다. 먹고, 일하고, 누군가를 사랑해도. 아랑곳 않고 이렇게 간단히. 이런 데서 내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른다.
- 검은 탑 中
마음이 들뜨지 않는다. 왜소한 자신이 무섭다. 추한 자신을 들킬까봐 무섭다. 자기 존재 그 자체에 자신이 없었다.
자기가 자기라는게 싫었다.
-국도를 벗어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