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두 번째 검은 집

uragawa 2010. 10. 29. 14:16

“자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감상이라는 것은 감정의 대체물이지. 따라서 감상적인 사람은 전혀 정반대인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어. 하나는 사춘기 소녀처럼 감정의 에너지 자체가 과잉된 경우, 또 하나는 정상적인 감정의 흐름이 어떤 이유로 막혀버려서 감상이라는 배출구로 터져나가는 경우지, 메구미는 분명히 전자이고, K는 후자라고 생각해.”



카운슬러는 조언을 해줄 수 있어도 어차피 방관자에 불과하다. 결국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전혀 다른, 복잡하기 짝이 없는 우주라는 거예요.”




“신지 씨는 생물학과를 졸업하셨다고 하니까, 생물의 r 전략과 K 전략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그것은 자신의 전공분야였기 때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었다.

“r 전략이라는 것은 곤충처럼 수많은 자손을 만든 다음 거의 내버려두는 방법이고, K 전략은 인간처럼 소수의 자식을 애지중지하면서 키우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도 특히 자식을 소중히 생각하는 전형적인 K 전략자이지요. 옛날에는 잠시 눈을 떼기만해도 아이가 죽어버리는 유아 사망률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에, 부모가 따뜻하게 보살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지나면서 사회보장제도가 발달하게 되었고, 문자 그대로 부모 없이도 자식이 자랄 수 있게 되자 r 전략의 상대적 유리성이 증가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자식을 만들고 싶은 만큼 만들어두고 내동댕이쳐도 사회가 돌봐주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자식을 자식을 남길 수 있지요. 즉, 자식을 열심히 키우는 것보다, 자식을 만들어놓고 도망치는 전략이 유리해져 버린 것입니다.”

가나이시는 얼음이 녹은 버번을 한 모금 들이켜 마른 목을 적셨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떠올린 것처럼 히죽거리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선의로 가득 찬 길도 지옥으로 통하는 일이있다....... 미국에 유학 갔을 당시에 친했던...... 어느 친구에게 배운 속담이지요. 
약한자를 보호해 주는 사회복지제도가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냉혹한 r 전략 유전자를 급속히 증가시킨 것입니다. 그것이 사이코파스의 정체이지요.”



“문제는 그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한 사람의 사이코파스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승수효과(乘數效果)에 의해서 수천 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좋지 않은 영향이지요. 그것은 지금의 현실을 둘러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에게까지 배급주의가 침투하고, 정의와  도덕을 입에 담는 것을 촌스럽다고 조소당하고, 다른 사람을 태연하게 상처 입히는 사이코파스적 가치관을 냉정하다든지 멋있다는 이유로 입이 닳도록 칭송하고 있지요. 예를 들면...... 글쎄요, 요즘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절반은 사이코파스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전이 만화에는 조금 더 인간미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요. 요즘에는 상대방이 악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선량한 주인공이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그냥 죽여버리잖아요? 게임에서는 더욱 심각합니다. 적이 되어 싸우는 상대방을 처음부터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단순히 움직이는 표적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지요.”

-사이코 파스 中



그때 문득, 샐러리맨이 조간을 보지 않는 것은 우울증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어느 정신과 의사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혹시 아시는지 모르지만, 꿈속에서의 하늘과 땅은 무의식의 양극을 나타내고 있어요. 똑같은 무의식이라도 하늘은 집합적 
무의식의 영역이고, 땅은 신체적인 영역을 가리키지요. 그런데 그 사이를 급격하게 흔들면 인간은 당치도 않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요. 그러한 극과 극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재미만 느끼고 아무런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역시 이상하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어요. 특히 가장 마지막 부분에 있는 어둠 속으로 떨어지는 곳에 이르면, 보통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숨이 막힐 지경일 거예요. 하지만 이 사람은 다만 ‘어두운,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계속 떨어져 갔습니다’라고 말했을 뿐이에요. 이것은 폰 프란츠가 분석한 꿈과 너무나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어요”
- 검은과부거미 中



아침부터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휘감았다. 그런 것은 원래 시간이 지나야 깨닫는 법이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깨달은 순간에는 이미 늦어버린다......
- 토르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