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uragawa 2009. 2. 23. 22:56

먹을거리란 이렇게 무거운 거로구나.

그걸 처음 깨달은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였다. 돈도 없었기 때문에 식비를 줄이려고 되도록 밥은 해서 먹었다. 나는 우리 또래치고는 드물게 어려서부터 패스트 푸드를 좋아하지 않았다. 감자와 양파, 양배추와 사과, 샐러드 오일과 참치통조림. 먹을거리는 살아 숨 쉰다. 살아 있기 때문에 이렇게 무거운 것이다.



여자는 과거를 가차 없이 끊을 수 있는 생물이다.

남자가 역사소설에서 인생의 지혜를 얻으려고 하거나 과거의 여자들을 자신의 훈장처럼 떠벌리는 동안에도 여자는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한다. 물론 과거에 연연하는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도 그런 여자의 일면이 있을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의 경우, 평소에는 그런 여자를 다른 방에 가둬두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넉넉하고 찬찬히 자기 자신을 동정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손님으로 쓰려고 대기시켜 놓은 것이다. 어쩌다 한 번씩 거실로 불러내서 마음껏 자기 연민에 빠지기 위해.
여자에게는 자기 연민이라는 오락이 있으니까.



나는 잔혹한 상상을 즐겼다.



“사진을 찍을 때면 누구나 웃는 얼굴이 되잖아, 학교 사진도 그렇고 직장 사진도 그렇고, 아무튼 카메라를 보면 반사적으로 웃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앨범에는 웃는 얼굴뿐이지, 그런 사진들만 보고 있다 보면 점점 기억이 바뀌어버리는 것 같아. 당시, 그 집단이 정말로 화기애애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말지. 실제로는 삐거덕거렸거나, 괴롭힘을 당했거나, 사랑과 미움으로 뒤죽박죽이었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