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불공정 한 것은 누구인가

uragawa 2009. 1. 5. 22:55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산세이도 서점 1층에 있는 신간코너로 바람을 쐬러갔다.



옆으로 나란히 놓인 신간들을 내려다본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재테크 서적. 가벼운 실용서. 질 나쁜 대필작가가 휘갈겨 쓴 유명 연예인들의 책. 텔레비전 드라마의 노벨라이즈.
주인공에게 묘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미스터리 하드보일드. 지나치게 센티멘털한 연애소설 '인기 있는 아저씨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센스다' 라는 띠지를 두른 연애지침서. 그리고 엄청난 수의 자기계발서. 상사의 마음가짐. 부하의 마음가짐. 노후의 마음가짐. 삶에 대한 마음가짐. 마음이 부자인 삶을 위한 마음가짐.
세자키는 한 권도 사지 않고 그곳을 나간다.
- 제1장 불공정한 시작 中



호감도란, 올리기는 어렵지만 떨어질 때는 한순간이다.



아아, 왜 사람은 남들도 자기와 같은 잣대로 세상을 본다고 믿는 것일까?
- 제2장 약속된 살인 中



‘추리소설’처럼 따분한 소설은 없다.

왜냐고? 읽기 전부터 결말이 드러나 있으니까.
사건은 반드시 해결된다.
범인은 반드시 밝혀진다.
게다가 진범은 반드시 초반부터 등장하고,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반드시 맡고 있다.
복선은 항상 그럴듯하게 적혀 있고, 조금이나마 소설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때부터 사건의 진상을 추리할 수 있다.
초반에 등장하는 수상한 인물은 항상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기호거나, 제2, 제3의 피살자로 이미 정해져 있다.
독자는 보수적이라, 작가에게 항상 공정할 것을 요구한다. 공정하게 웃겨라. 공정하게, 놀라게 하라.



“인간은 슬퍼도 웃습니다. 극한 상태에서도 배는 고픕니다. 사람을 죽인 인간이라고 해서, 모든 살인자가 매일 밤 죄악감 때문에 악몽에 시달린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 살의란 건, 느끼려고 맘만 먹으면 간단해요.”

- 제3장 사랑의 예감 中



신문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문장을 얼마든지 꾸며댈 수 있고, 텔레비전은 '편집'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으니까.



부정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긍정도 할 수 없다.

요컨대 모른다는 말이다.
- 제4장 그림자를 밟다 中



사람은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잔혹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

아무리 섬뜩한 것이라도, 몇 시간씩 그것을 응시하고 있으면 사람은 결국 그것에 익숙해진다는 것.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지극히 평범한 판단력을 가지고.



어느 시대고, 남을 비난하지 않고는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룰은 있습니다.”

“룰?”
“가령 클라이맥스에서 범인이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 또 탐정 역의 추리에 의지하지 않아도, 독자가 자기 힘으로 진상을 밝혀낼 수 있을 정도의 단서를 준비해둘 것.”
- 제5장 단서는 눈앞에中



“그러게요! 근데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개 이해를 받지 못해요. 독자란 사람들은 참 보수적이거든.

약속대로의 반전밖에 인정하지 않아. 그런 거라면 반전도 뭣도 아닌데 말이에요.”


“문장력이란 노력으로 좋아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센습니다, 타고난 센스.”

- 제6장 고백의 밤, 고백의 아침 中



“T.H. 씨! 당신, 미쳤군요!”

”미쳤는가 아닌가를 논하는 건 가치가 없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붙여진 꼬리표에 불과하거든.
자기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그저 그럴듯하게 설명하기 급급하고, 거짓된 리얼리티에 흠뻑 젖어 있기 바쁘지.정말 비겁하고 불공정한 인생 아닌가!”



지금부터다. 지금부터가 감을 잡기 어렵다.

아무 설명도 하지 않으면 수수께끼가 너무 많이 남고, 모든 것을 설명하면 세련미가 떨어진다.
『추리소설』은 항상 끝이 어렵다.
- 최종장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마지막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