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일의 기쁨과 슬픔

uragawa 2020. 7. 30. 22:30

연애 기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연봉을 모르고 있었다. 여느 회사가 그렇듯 우리 회사도 자신의 연봉을 누설하면 해고할 수 있다는 사규가 있었다. 하지만 결혼을 준비하면서 어쩔 수 없이 서로가 모아둔 재산과 연봉을 공개해야 했다.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말하는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가족오락관 찍는 것 같다는 농담을 하면서 웃고 있었다. 셋, 하던 그 순간, 나는 구재와 내가 외치는 숫자의 앞자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보다 세전 기준 천삼십만원을 더 받는 구재는 당연히, 모아놓은 돈도 나보다 훨씬 많았다. 구재 역시 당황한 눈치였다. 생각보다 큰 차이가 나자 자기도 민망했는지 이렇게 말했었다.
“네가 이년 동안 백오피스에 있어서 그랬나봐.“
그래, 그게 맞는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왜 이년 동안 거기에 있었을까. 내가 일을 못해서 그랬나. 그런데 시켜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까. 무엇보다 지금은 같은 부서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연봉 차이가 이렇게 많이 나야 할까. 구재가 일을 잘해서? 대체 얼마나 잘하길래? 딱 천삼십만원어치만큼?

- 잘 살겠습니다 中





결제 완료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잠깐 주저하긴 했는데, 전 여자친구 중 한 명이 그 항공사의 국제선 승무원이어서 그랬다. 망설임은 사소했고 정말이지 찰나에 불과했다. 어차피 일본까지는 한두시간밖에 걸리지 않으니 혹시 만나더라도 껄끄러운 건 금방 지나갈 것이었다.



“우리 지훈씨, 참 글로벌하네.”
웃는 입술 사이로 드러난 지유씨의 가지런한 치아를 보자 조금 전 일본 여자가 묘하게 예뻐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고르지 못한 치열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모르겠어요? 내가 지유씨 좋아하는 거잖아요. 저 여자 만날 만큼 만나봤어요. 그런데 여태까지 이렇게, 진짜, 뭔가, 통한다는 느낌이 드는 여자는 단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요.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것 때문에 지유씨 좋아하는 거라고요.”

-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中



“전 막 열심히 하기도 싫고, 막 성공하고 싶지도 않은데요.”
- 다소 낮음 中



연봉도 많이 올랐다. 2,663만원. 그러면 이제 세후 월 201만원. 월세 50, 관리비 7, 공과금 10, 인터넷 1, 핸드폰 요금이랑 할부금 7, 남친은 없지만 혹시 모를 언젠가를 대비한 결혼자금용 적금 55, 그리고 이번에 취직 축하 겸 오랜만에 만난 학교 선배를 통해 가입한 환급형 보험과 실비보험이 12, 새 블라우스랑 구두, 치마, 바지 하나씩 해서 17, 마트에서 식재료랑 생활용품 이것저것 장 보면 7, 이렇게 쓰고 나면 남는 게 35. 앞으로는 교통비 포함 하루 만천원씩 쓰는 게 목표였다.



어제 채용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옵션으로 스케일링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태어나서 처음 해본 것이었다. 전에 없던 새하얀 이가 반짝 거렸다. 나는 개운해진 이가 너무 마음에 들어 터널을 지나는 내내 창문을 보며 이— 이— 하고 웃었다.

-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中





여자는 경비원이 택배 상자 위에 오피스텔 호수를 매직으로 크게 써놓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쉽게 찾을 수 있어서 편하다는 장점도 있긴 했지만 자신의 거주지가 그만큼 커다랗게 쉽게 타인에게 드러나는 것 같아 불쾌했다. 여자는 숫자가 적힌 부분이 바닥을 향하게 상자를 거꾸로 들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 새벽의 방문자들 中



인생에서 가장 후회했던 경험과 그 이유를 기술하시오.
나는 하얀 바탕에 깜빡이는 커서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브라우저 창을 닫고 노트북을 꺼버렸다.

- 탐페레 공항 中





더보기

일의 기쁨과 슬픔(2019)



도서관에서 대여한 전자책.
친구 추천.


표지는 숱하게 많이 봤지만,
사실 웬만하면 한국 소설 잘 안 읽어서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도서관에서 전자책을 대여할 수 있는데 왜 안 봐요!!!!



[잘 살겠습니다]
『현대문학』 2018년 12월호

어머나, 문장 하나하나 다 주옥 같잖아!
빛나 언니 남편 될 사람 펀드매니저고
시댁에서 서울집 해줬다는 이야기만 판타지 같고 ㅋㅋ
그냥 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아니냐.

여자는 백오피스로,
남자랑 연봉 앞자리 차이 나는 것도 그렇고.

특히 백치미 있는 빛나 언니
너무 누구 생각나서 빵 터졌네.



[일의 기쁨과 슬픔]
『창작과비평』 2018년 가을호

어? 이거 첫 문장 읽으니
예전에 읽었다는 게 생각났어.
작가님 이름은 안 보고 읽었었는데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서
다음 에피소드도 기대가 되는 것이다.

영어 이름 쓰면서
수평수직혼돈의카오스 스타트업 망해라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문장 웹진』2019년 3월호

결제 완료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잠깐 주저하긴 했는데,
전 여자친구 중 한 명이 그 항공사의 국제선 승무원이어서 그랬다.

여기서부터 띠용이었던 것이다.
얘는 뭐지? 싶었음. 나 정도면 괜찮지 레벨의 남자. ㅋㅋ 진짜 도랐


진짜 모르겠어요? 내가 지유씨 좋아하는 거잖아요. 저 여자 만날 만큼 만나봤어요.

예? 갑자기 TMI 방출
어디서 나오는 근자감이야. 여자를 만날만큼 만나봤건 아니건 ㅋㅋㅋㅋㅋㅋ



[다소 낮음]
『문학3』 문학웹 2019년 6월

이건 생각보다 별로
동물병원에서 반려동물 사온 것부터 아웃



[도움의 손길]
『악스트』 2019 9/10월호

아주머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제일 스릴러 아니냐고 쫄린다 쫄려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
『릿터』 2019년 2/3월호

채용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옵션으로 스케일링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태어나서 처음 해본 것이었다. 전에 없던 새하얀 이가 반짝 거렸다.

스케일링한다고 이가 반짝이지 않잖아요.
뽀독뽀독하고 치아 사이가 다 뚫린 느낌이잖아
(읽는데 쓸데없이 진지해져 버렸다.)



[새벽의 방문자들]
테마 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

이 소설은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집 초인종 누른다는 이야기를
남자버전으로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너무 하이퍼 리얼리즘이야, 소름이었어 ㅋㅋㅋ

여자는 경비원이 택배 상자 위에 오피스텔 호수를 매직으로 크게 써놓는 것이 늘 불만이었다. 쉽게 찾을 수 있어서 편하다는 장점도 있긴 했지만 자신의 거주지가 그만큼 커다랗게 쉽게 타인에게 드러나는 것 같아 불쾌했다. 

근데 이 호수 적어놓는 건 택배 기사님들이 하는 거 아니냐.




[탐페레 공항]

『모티프』 2019 신입 특집호
(발표 당시 제목 ‘Do or Do Not’)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기 참 어렵다.
지원자들의 평균 스펙들은 모자람이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