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활은 ‘책’과 ‘산책’을 축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먹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니고 ‘책’과 ‘산책’에 자유로운 시간과 가진 돈 대부분을 썼다. 하지만 가진 돈이라고 해봐야 앞에서 말한 예산의 범위 안이므로 호주머니에 든 동전을 짤랑거리며 걷는 정도였다. 헌책방 앞 가판대를 뒤지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산책하며 그걸 읽고, 카페에 들어가 훑어보는 일의 반복.
집중해서 책을 읽으며 진보초로 가고 싶을 때는 일반 전철이 제일이다. 승객도 쾌속보다 적고 도심의 번화가, 상업 중심가를 지나는데도 한가한 느낌이 든다. 가방에는 항상 네다섯 권의 책을 넣어둔다.
나중에 안 일인데, 고서점 일에는 책의 가치를 판단하고 판매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치 없는 책을 과감하게 처분하는 것도 포함된다. 책을 사러 오는 사람, 팔러 오는 사람, 책을 매입하는 업자, 처분하는 업자들이 뒤섞인다. 하루에 대체 얼마나 많은 책이 진보초에 들어오고 또 나가는 걸까. 진보초에는 얼마나 많은 책이 있는 걸까,
책과의 우연한 만남. 같은 만남이라도 사람과 크게 다른 것은 이쪽 의사만으로 인연을 맺을 수도 있고 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맺고 싶으면 백 엔짜리 동전 몇 개와 교환하여 일단 소유하기만 하면 된다. 끊으려면 책장에 돌려놓기만 하면 간단히 끝난다.
한편 사람과의 만남과 유사한 것은 그 인연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만난 책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충 훑어보고 끝낼 때도 있다. 피가 되고 살이 된 경우는 그 책을 구한 서점도 만남의 장소로서 기억에 남는다. 어쨌든 진보초에 얼마나 존재하는지 모르는 방대한 책 가운데 한 권과의 만남이다. 우연은 필연의 복합적 산물일 것이므로 나는 일단 책을 소유하는 것을 택하고 싶다.
나카노 구립 중앙도서관에서는 한 번에 책을 10권까지 빌릴 수 있다. 도서관법이 정한 대로 국민 교육과 문학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책을 무료로 빌려준다. 당연하다고 하면 더는 할 말이 없지만, 이런 구조는 인간이 발명한 것 중에서 꽤 괜찮은 것이 아닐까. 생각할수록 재미있다.
보고 싶은 책을 차례로 빌렸다. 빌린 책은 도서관 복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읽기도 하고 나카노 하우스의 다락에 드러누워 읽기도 했다.
잇세이도 서점의 전무는 관대한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서두를 것 없네. 매일 낙장 조사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들여 서명이나 저자를 외워나가면 된다네” 하고 조언해주었다. 선배 점원은 내가 실수를 해도 결코 화를 내지 않았고, 침착하게 자기가 대신 손님에게 책 정보를 알려주었다.
‘낙장 조사’란 헌책방 특유의 일로, 들어온 책이 파손되지 않았는지, 더럽혀지지 않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을 말한다.
나는 보수적인 서점에서 대안 서점으로 이행한 헌책방 주인이었지만 또 하나의 헌책방 형태, 즉 ‘목록 전문’ 서점을 은밀히 동경하고 있었다. 목록 전문 서점이란, 예컨대 근대시나 미술, 건축 등 그 분야의 책에 특화된 고서 목록을 제작하고 특정한 손님에게 배포하여 주문을 받는 서점을 말한다. 주인의 식견과 판단이 고서 가격에 반영된다. 실제 점포는 없다. 예컨대 우치보리 히로시 씨의 ‘샤쿠지이쇼린’, 에비나 노리 씨의 ‘에비나 서점’, 나카무리 가즈야 씨의 ‘미나토야 서점’이 목록 전문 서점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