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유리병 편지

uragawa 2019. 7. 11. 22:57

외로움이 온몸을 짓눌러 올 때가 있다. 모든 인간이 그런 때를 만난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이 왜 이토록 외로운지 묻는다. 하지만 고독과 고독에 대한 의문은 별개다.



성 동정녀 교회 신도들은 가능한 한 병원을 가지 않는 사람들이다. 성모가 자신들을 지켜 주신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티야 사이바바, 사이언톨로지, 성 동정녀 교회, 여호와의 증인, 하느님의 자녀들, 영원의 공동체 같은 이름들이 있었고 통일교, 제의 진리, 성스러운 빛의 사명처럼 그녀로서는 처음 들어 보는 다른 이름들도 가득했다. 각 단체와 조직마다 지켜야 할 계율들은 서로 달랐지만, 모두들 자기 단체만이 조화와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교단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의 집에서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에겐 즐거움이라는 것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본 것이 다섯 살 때였다. 한 개신교 목사가 찾아왔을 때 아버지는 온갖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며 그를 쫓아냈고 도망가는 목사의 모습을 보면서 흡족한 얼굴로 웃었다……. 그는 웃음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 하는 것과는 원래부터 다른 것임을, 여러 해가 지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배반당한 것이 꼭 이번만은 아니었지만, 마음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애써도 익숙해 질 수 없는 것들 중 하나가 배반당하는 것이다.



봄에 눈발이 날리면 그 눈발은 채 땅에 닿기도 전에 공중에서 녹고 만다. 흩날리는 눈발의 모든 아름다움과 가벼움이 그것들을 만들어 낸 하늘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마법은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카를은 우테르슬레우 모세의 세로로 길게 뻗은 길에 차를 세웠다. 시동을 끄자 갑자기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밀려왔다. 집에 가면 사람들이 있고, 삶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삶이 아니었다. 그리고 직장도 있었다. 하지만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카를에게는 변변한 취미도 없었다. 즐기는 운동도 없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어딜 가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술집에 들러 외로움을 달래고 슬픔을 녹이는 것도 한 방법이었지만 술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배를 타는 건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는 것과 아주 비슷해요. 낙타를 타면 흔들리는 바람에 구역질이 나요. 그런데 다 토해 버리면 몸의 수분이 빨리 부족해져 몹시 위험해요. 사막에서는 탈수만큼 위험한 게 없거든요. 그래서 토할 것 같아도 다시 삼켜요.」




죽음 말고, 그녀에게 가장 괴로운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도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 그러자 입 안은 바싹 말라 있었는데도 서럽고 두려운 마음에 왈칵 울음이 터졌다.

그녀가 이렇게 갇혀 죽는다면 몇 년 후 사람들은 그녀를 꺠끗이 잊어버릴 것이다.




딸들을 두들겨 패고 나면 그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다. 사실 그의 매질보다 이런 회개가 더 최악이었다 목사였던 소년의 친부는 한 번도 회개 같은 것을 하지 않았다. 친부는 적어도 행동과 생각에 일관성이 있었다. 그러나 양아버지는 정반대의 인간이었다. 그는 폭력을 행사한 다음, 두 딸의 뺨을 만지면서 화를 참지 못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고,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인 고약한 의붓오빠도 용서하라면서 딸들을 달랬다. 그런 다음에는 눈물을 닦도 방으로 들어가 옛날 친부가 목사복이라 불렀던 긴 옷을 걸치고 나와 자신의 연약하고 아무 죄 없는 두 딸을 보호해 달라며 하느님에게 기도했다. 그의 기도를 듣고 있노라면 그의 두 딸은 사악한 지상으로 내려온 하늘의 천사들이었다.




살아오면서 확실하게 배운 것이 하나 있었다. 인생에서는 언제나 선수를 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먹이든 칼질이든 아니면 심리적이든.




이사벨은 절망과 슬픔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어서 뭐 할 것인가? 고통만 커질 뿐이다. 이 고통과 괴로움에는 약도 없다. 그러니 울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결정이 내려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늘 그렇듯이. 그는 하느님과 팔씨름하며 힘을 겨루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다.

왜 하느님은 자신을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걸까? 왜?




카를은 매번 깨닫는 일이지만 겉으로는 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약하고 예민하다는 것을 이번에도 다시 한번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