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빵 고르듯 살고 싶다

uragawa 2018. 10. 20. 23:52

두 번째 회사는 가정집을 사무실로 써서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점심밥을 직접 만들어 먹었다. 이것도 웃기지만 사실이다. 십여 명의 직원들이 돌아가며 두세 명씩 짝이 되어 점심시간 한 시간 전부터 장을 보고 밥을 짓고 상을 차렸다. 이 덕에 10인분이 넘는 밥과 국과 반찬을 만들어보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따금 대표라는 사람이 “오늘은 밥이 질다”라든지 “국이 아주 건강에 좋은 맛이네”라는 식으로 평가를 했는데 그게 맛있다는 말이라 해도 기쁘지 않았다. 점심을 차리는 일도 업무의 연장이라니, 당황스러웠다.



하얀색 컵에 유자청을 담고 펄펄 끓은 물을 부었더니 차가운 청과 뜨거운 물이 만나는 결이 보였다. 인간은 참 이상하구나. 과일을 썰어 설탕에 담아 맑아질 때까지 보관하고, 차게 만들어서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다니. 그리고 완성된 것을 그 과일의 청(淸)이라고 부르다니.

어쩌면 사람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차가워진 혹은 먹먹해진 마음에는 조금씩 저어주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음의 문제는 냉장 보관된 청보다 더 차갑게 굳을 수 있기에 단숨에 풀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덧’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고, 더디게 나아진다. 



떠오른 생각을 저버리면 그대로 영영 안녕이라는 걸 알기에, 멍하게 있다가도 핸드폰을 들어 메모장에 적어 놓았다. 그랬더니 좋은 의미로 뒤처지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무얼 쓸까 생각하느라 지나간 순간과 대화를 꺼내게 되면서 계속 계속 고개를 돌려 내 뒤를 돌아본다. 인생이라는 건 사라지는 걸 전제로 하고 있으니 다시 기억해내며 내 인생에서 뒤처지는 일은 좋은 일이다.



누군가의 욕을 하거나 누가누가 더 힘든지 서로 비교하는 대회라도 참가한 듯한 대화면 오간다면, 그 관계는 길어질 수 없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드는 생각은 한결같았다. 왜 ‘우리’에 대한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는 건지, 이야기를 나누려고 왜 노력해야 하는 건지, 노력하면서까지 만날 이유가 인기는 한 건지.
타인을 욕하는 것도 버릇이 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언제나 불만과 불평이 넘쳤던 나는 매사에 꽤나 조심하게 되었다.



계절에 신경을 쓴다는 건 매일의 다름을 알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날을 살며 늘 같은 길로만 다니고 결국 같은 자리에 고여 있다가 어제와 똑같이 어둠 속에서 사라지며 끝나는 하루라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분명한 건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