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사탄탱고

uragawa 2018. 8. 7. 22:43

“시계가 둘인데” 하고 체구가 큰 사내가 다른 사내에게 말한다. “시각이 제각각이군. 둘다 정확하지 않고. 여기 우리 시계는….” 그가 보기 드물게 길고 가느다란 섬세한 검지로 위를 가리키며 말한다. “너무 느리게 가네. 저쪽 시계는…. 시간이 아니라 처분을 기다리는 영원한 순간을 가리키는 것 같군. 비를 맞는 나뭇가지나 우리나 마찬가지야. 거부할 방법이 없지.”

-우리는 부활한다 中



그는 일상생활의 동선을 정교하게 반영하여 의자의 위치를 정했고 그럼으로써 창가의 감시대를 떠나는 횟수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었다.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먹고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일기를 쓰고 독서하기에 용이하도록 사소하게 손이 가는 물건들을 모아 가능한 한 편리하게 배열하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았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관대하게 넘기는 일은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우두커니 기억만 하는 것은 무력하고 무능하므로 그것으로는 과업을 수행할 수 없었다. 기호들을 의미 있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연결할 방법이 있어야만 기억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간을 이겨낼 수가 있었다.
-뭔가 안다는 것 中



죄책감이란 한번 혜성처럼 작열하고 나면, 이후엔 여명처럼 희미한 의식을 불편함 정도만 남기는 것이다.
-거미의 작업 Ⅰ 中



그녀는 어둠을 깨트리고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압박해오는 어둠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이곳도 더 이상은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금방이라도 어느 구석에서 무언가가 덮쳐올 것 같았다.
-실타래가 풀리다 中



‘우리는 이 세계라는 돼지우리 속에서 태어나 갇혀 있지.’ 그는 여전히 지끈거리는 머리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오물 속에 뒹구는 돼지들처럼 뭐가 어찌된 건지도 모르고 눈앞에 어른거리는 젖꼭지를 향해 아우성치지. 사료 통으로 빨리 가려고, 밤이 되면 침대로 돌아가려고 허둥대는 거야.’
-거미의 작업 Ⅱ 中



중요한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는 것이지, 어떻게 일어났느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이제 대답은 정해졌습니다! 여러분도 그 대답을 아실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렇지 않나요? 제가 잘못 생각하는 걸까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다만 여러분, 어떤 사실을 안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법이지요.
-이리미아시가 연설을 하다 中



“하, 봤죠. 기차가 떠나버렸네요. 이제 당신은 별 볼일 없게 된 거예요.” 술집 주인은 그 말을 듣고 당장 그녀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으나 가만히 있었다. “그런 거죠.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고요. 그러니 태연해야 한다고 내가 언제나 말하잖아요. 당신이 가진 걸 봐요. 시내의 좋은 집, 고운 아내, 자동차…. 그것들로도 당신은 부족해하죠. 당신은 그냥 이렇게 늙었는데요!” 술집 주인이 대꾸했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집에나 가요.” 호르고시 부인은 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남편도 댁처럼 쉴 줄 모르는 사람이었죠. 그 사람도 늘 뭔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뒤늦게야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한 일이 뭐였을까요? 그 사람은 밧줄을 들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답니다.” “그만 좀 해요!”



후터키는 자기 물건들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낡은 가방 두 개에 던져 넣고 호리병 속에 유령을 다시 가두기라도 하는 양 벼락같이 자물쇠를 채운 다음 가방을 위아래로 겹쳐놓고는 떨리는 손가락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곳에 살았던 개인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난장판이 치워지자, 이제 그를 둘러싼 공간은 그저 썰렁하고 황량하기만 했다. 짐을 싸고 나자 그는 자신이 이 세계에 한 부분이었고 이곳에 실제로 존재했었다는 증거의 파편마저 사라져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희망찬 날들이 그의 앞에 놓여 있든지 간에…
-되돌아본 광경 中



슈미트 부인에 관한 단락에 이르러 그들은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하고 말았다. “젖이 큰 멍청한 여자” 같은 표현을 어떻게 손봐야할지 난감했기 때문이다. 저렇게 막돼먹은 표현을 내용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서기는 꽤 오랜 시간 의견을 나눈 끝에 마침내 “정신적으로 미성숙하고, 특히 자신의 여성성을 과시하는 사람”으로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늙어빠진 창녀”라는 무례한 표현과 맞닥뜨리고 말았다. “품위가 수상쩍은 여성” “떳떳치 못한 환경의 여성” “방종한 부인”을 비롯한 몇 가지 대안을 떠올렸지만, 문제의 실체를 가리는 부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에 고려대상에서 배제되었다.
-그저 일과 걱정뿐 中



“내년 봄까지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는 연필로 종이를 찢지 않기 위해 조심하면서 일기장에 써넣었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탓인지 종이는 축축해져서 조금만 방심해도 찢어지기 십상이었다.
-원이 닫히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