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블랙머니

uragawa 2017. 11. 23. 21:23

저녁의 정적이 수정처럼 흔들렸다. 높고 가늘게 떨리는 소리가 집 쪽에서 들려왔다. 공작새 울음일 수도, 여자의 비명일 수도 있었다.



“내가 20년간 진료를 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실수가 된다 해도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둬야 한단 거요.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치게 되거든. 폐기종 환자면 담배를 끊고, 만성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끊고, 그리고 중증 낭만주의자 아가씨는 현실주의자로 변합디다. 여기 내 사랑하는 아내처럼”



나는 침대에 쓰러졌고 아무 꿈도 꾸지 않고 잤다. 해 뜨기 직전 바람이 잦아들었다. 조용함에 나는 뭐가 빠진 거지 하고 의아해하며 어났다. 회색빛에 창문이 뿌옜다. 시내 바닥을 돌아다니는 거지처럼 철퍽거리는 바다 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려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알아요. 미안합니다, 아처 씨. 현실은 난 공장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말 그대로 출근 카드를 찍어야 하는 신세예요. 그리고 학생들도 점점 더 공산품처럼, 우리를 지나가며 교육이라는 얇은 꺼풀을 얻을 뿐이죠. 불규칙 동사를 배우지만 문장에서 어떻게 써야 할지는 모릅니다. 사실 훨씬 훌륭한 문장의 언어인 프랑스어는커녕 영어로도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드는 학생이 드물이어요.”



머시 병원 수납원의 눈은 계산기 같았다. 그녀는 내 수입을 가늠하고 지출을 빼고, 총액을 적자로 계산하는 듯한 눈으로 창살 뒤에서 나를 살펴보았다.
“내가 값이 얼마나 나갈까요?” 나는 명랑하게 말했다.
“죽어서요 아님 살아서요?”



“꼭 그렇다니까. 이렇게 또 직장에서 잘리겠군요.” 그는 한동안 말없이 하늘을 내다보고 있었다. “낮에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었어요. 내기해도 좋지만…… 아니, 내기는 안 하고 그냥 말할게요. 난 미시시피 서쪽에서 제일가는 실패자일 겁니다. 살 가치도 없어요.”



실베스터는 자존심을 건지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존심은 지난 30분 사이 이 방에서 영영 사라진 게 아닐까 싶었다.



한밤중에 깨어났다. 빗발이 창가에서 셀로판처럼 버스럭대고 있었다. 위스키 기운이 가시고 나는 한순간 공황상태에 빠져 나 자신을 보았다. 인생이 고속도로의 차들처럼 쌩쌩 지나가는 사이 어둠 속에 홀로 누워 있는 중년 남자.



햇볕이 아침 안개를 날려 버렸고, 인도가 말랐다. 내 우울함은 더 느리게 날아갔다. 나는 희망적인 징조를 찾아 우편물을 뒤졌다.